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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13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찾은 대학 캠퍼스는 스산했다. 05학번 졸업반 여성 후배(22)는 지난주 4개 회사의 면접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의지가 부족한 제 탓일까요"라며 자괴하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는 후배에게 뚜렷한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군 휴학 탓에 아직 여유가 있는 같은 학번 남자 후배(25)는 "여자 동기들 중에 취업됐다는 애가 하나도 없어요"라고 했다. 캠퍼스를 나오는 길에 본 도서관 불빛은 그저 공허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상장기업 350개사의 채용인원을 분석한 결과, 1만3799명 가운데 여성은 20.1%인 2770명뿐이었다. 경기불황이 여전한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듯싶다. 여성 법조인과 여성 교사들이 늘어나고, 대입 시험과 대학 학과 성적에서도 여성들이 앞선다는 '여풍' 뉴스가 넘치지만 정작 '평범한' 여성들의 취업 소외 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 '여풍' 뉴스에 여성 지위 신장의 의미부여보다 기득권을 누려온 남성들의 뜨끔한 위기의식이 녹아있는 것 아닐까 의심해보는 까닭이다.

한 여대생이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 '루저'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민감한 신상 정보가 까발려지며 벌거숭이가 됐다. 현상을 표면적으로 볼 땐 철없는 여대생의 속물근성이 담긴 발언의 문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꺼풀 벗기면 그 정도 발언을 여과없이 편집한, 혹은 한국 여대생들의 평균의식을 '대변'하게끔 연출한 방송국의 무개념일 수 있겠다.

하지만 여성을 향한 '꿀벅지'나 '육덕녀', 남성을 향한 '초콜릿 복근'같은 부름만큼이나 특정 수치의 키 숫자를 두고 가른 '루저' 혹은 '위너' 발언 역시 인간을 평가하는 잣대를 외모에만 절대적으로 들이댄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키는 성형이나 운동으로 발전(?)시킬 방법이 없다는 점과 '루저' 발언의 탄착점이 '다수의 남성'으로 영점조준 돼 반발을 사고 있다는 점뿐이다. 하지만 쭉쭉빵빵한 여성의 몸매를 원하고 심지어 룸살롱에서 돈을 주고 그들을 소비하기까지 하는 남성들의 동물적 욕망과 저 여대생의 철없는 발언 사이엔 얼마만큼의 간극이 있을까.

게다가 상장기업 채용시장에서 ‘루저’가 된 여성들은 교사나 법조인 등 수치화된 점수로 전문직 지위를 따내거나 혹은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내몰린다. 그러다 어떤 이들은 얼짱을 호명하는 남성들에게 종속적으로 복무하는 것으로 그들의 마지막 선택지를 찾기도 한다. '루저' 발언을 한 여대생은 그런 면에서 여전히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공적 루저'들의 부정적 단면일 뿐이다. 그런 ’루저‘를 감싸줄 아량마저 우리에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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