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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14

비정규직 연구원인 친구 곽모(28·여)씨는 다가오는 연말이 막막하다. 올 4월 취업한 뒤 3개월 단위로 고용 계약을 갱신해왔는데, 이번엔 연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서른이 다가오는 나이를 감안하면 육체적인 위험이 적을 때 아이를 낳아야겠다, 싶다. 석사까지 마친 공부도 더 하고 싶다. 둘 모두를 하려면, 우선 돈을 벌어야하고 환경을 만들어야한다. 하지만 지위는 불안하고, 그에 따라 욕망하는 것들은 모두 언감생심이다. "내가 안정돼야 애도 낳지,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어떻게 아이를 낳겠어." 뜨거워야할 날숨엔 왠지 바짝 날이 서 있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25일 저출산 대응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미래기획위원회는 '초등학교 취학연령 1년 단축', '해외 우수인력 이민 유치로 한국인 늘리기 프로젝트' 등의 방안을 속속 내놨다. 하지만 아무리 훑어봐도 출산 적령기인 20대와 30대의 불안한 사회적 지위를 동여맬, 강제력을 갖춘 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육아휴직을 하는 남성과 임신·출산을 하는 여성을 우대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기업 친화적인 포지티브 장려책이 비현실적이고 공허하게만 보인 이유다.

부 대안으로 제시된 '청소년 임신 때 자퇴강요 등 싱글맘 차별 철폐' 추진안에선 이번 대책과 현 정부의 본질이 그대로 보인다. 싱글맘이 부당하게 차별받는 일이 없어야한다는 건 그 자체로 봤을 땐 인권친화적이다. 하지만 차별 철폐 논리의 상위 단계에 '저출산 대책'이란 레테르가 붙으면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부당한 사회적 편견의 피해자로 보호받아야할 지위에 있던 싱글맘이 어느덧 인구를 늘려 국가의 규모의 경제에 헌신하는 '출산의 도구'란 위치로 자리바꿈하기 때문이다. 이때 인권은 사라지고, 인격을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국가주의만 오롯이 남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어서까지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길 원한다. 인간이 명성을 남기는 것만큼이나 '내 새끼'에 집착하는 까닭에는, 핏줄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 이끌림 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존재의 재생산을 통해 영원히 소멸하지 않길 바라는 영속의 욕망도 포함돼 있다. 그런 면에서 임신과 출산은 ‘나’란 존재가 부정되는 사회에서라면 굳이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부차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나의 현재적 인권과 인격이 부정되는 사회에서 미래의 '또 다른 나'까지 동원하겠다는 국가가 불편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출산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국가적 위기보다,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먼저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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