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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총학생회장 전지원씨 photo by 라운드테이블


이재훈의 인앤아웃 no.16

올해 총학 선거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구분이 한층 더 흐릿해졌다. 어느 쪽이나 내놓은 공약은 등록금 문제와 학생 복지가 주를 이뤘다. 운동권이든 비권이든 '정치적' 구호를 내세우길 꺼렸다. 그들에게 좌와 우 혹은 민족해방(NL)과 민중민주(PD) 식의 진영 구분은 더 이상 무의미해보였다.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스스로 마련해야하거나, 기업이 요구하는 각종 스펙 쌓기에 허덕이는 그들에게 거시적인 정치 담론에 대한 사유는 사치인 것 같았다. 대신 거친 현실 속에서 스스로 생존하는 법에 대한 생활 속 고민들의 교류가 그들의 공약에 하나씩 묻어 있었다.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선본을 어떻게 꾸리느냐고 물었더니, 답이 살짝 당황스러웠다. 진영이 비슷한 학생회 집행부들을 규합하던 이전의 형태는 통용되지 않았다. 그들은 수업을 함께 들으며 꾸렸던 발표 팀이나 스터디 그룹에서 만난 친구들을 설득해 선거운동에 참가시키고 있었다. 당연히 ‘마음에 맞는’ 운동원들을 학생회에서 조달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랐다. 지금의 후보들은 정치적 성향과는 관계없는, 그야말로 함께 게임하고 함께 수다 떨던 친구들을 하나 하나 설득해 선본을 꾸리고 있었다. ‘어쨋든 내 편’일 거란 진영논리의 편리함은 풀뿌리 한 명을 규합해나가는 과정의 치열함으로 변하고 있었다. 과거 학생운동을 했던 '진보적'인 기성 세대들이 가끔 요즘 대학생이 '탈정치적이어서 이기적'이라고 규정짓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고려대 총학생회 선거가 한창이던 3일 보수 논객 지만원씨는 '고대생들의 연좌제'란 글을 올렸다. "부모 자식 간에는 대부분 사상이 일치한다. 또 전교조 교사 밑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좌경화되어 있는 지금의 현실을 놓고 연좌제가 비논리적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대학생들의 의식이 우리 기성세대와 같다면 정신적 연좌제가 투표에 작용할 것"이란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지씨의 바람과 달리 고려대생들의 다수는 '연좌제'에 휩쓸리지 않고 민주당 전병헌 의원의 딸 지원(23)씨를 43대 총학생회장에 당선시켰다. 10일 만난 지원씨는 "대학생들에게 좌․우 구분은 무의미해졌지만 스스로 판단했을 때 옮고 그름에 대한 확신이 서면 정치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안팎을 둘러싼 몇 가지 모습에서 탈근대성과 봉건성,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엔가 존재할 근대성의 묘한 공존이 읽힌다. 시대를 이끄는 지식인으로 기능하며 시민들을 계몽하는 동시에 반민주 세력과 맞서며 민주주의란 보편적 이상을 추구하던, 학생운동이란 집합적 열정은 2009년의 척박한 현실에 맞서고 있는 한국 대학생들이 짊어지기엔 버거운 부피가 됐다. 게다가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을 운동권이나 비권으로 구별짓고 규정하고 구속하길 원치 않는다. 그들의 그런 탈근대성은 ‘집단의 누구’로 불리는 보편적 존재보단 '나' 그 자체로만 불리길 원하는 개별성 추구에서 기인하고 있다. 그 개별성 추구를 ‘이기심’이라기 보단 상대적으로 더 존재론적인 ‘내적 고민’으로 읽고 싶은 건 과한 욕심일까.

그들은 그저 자신들을 집어삼킬 현실을 앞에 두고 어떻게 하면 생존할까 고민하며, 가끔은 생존 기반을 얻기 위해 어떻게 '정치적' 목소리를 낼 것인가도 고뇌한다. 그런 면에서 과거 박수를 받았던 학생들의 ‘뜨거운 열정’은 현재적 의미에서 ‘냉정한 현실감각’보다 뒷전에 놓이게 됐다. 이때 그들을 가족이란 1차 집단에 종속된 부품과 같은 존재로 보는 한 보수 논객의 봉건적 시각과 그들을 '탈정치적이어서 이기적'이라고 비판하는 '진보적' 기성세대의 근대성이 가진 간극은 어느 정도일까. 아마 대학생들은 양쪽 모두에게 물을 지도 모른다. 우리 각자는 그저 살아야하기 때문에 살 뿐이지 않은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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