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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17

얼마 전 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잔뜩 열 오른 목소리로 "형, 나 아이폰 샀는데, 기자들이 쓰면 좋을 것 같아. 형도 사라"고 했다. 50인치 LED TV가 나오는 시대에 영화를 빔으로 쏘는 아날로그적 맛이 조아 중고 프로젝터를 살 만큼 ‘레이트 어댑터’인 난 "뭐가 그리 좋냐"라며 시큰둥했다. 하지만 동생은 기가 꺾이지 않고 "아무 데서나 인터넷이 가능하고, 글도 어디서든 올릴 수 있어. 형이 어디서든 기사를 쓸 수가 있다고!"라고 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데다 못지 않은 레이트 어댑터인 동생을 한껏 달뜨게 하더니, 열풍이 불어 연말까지 50만명에 가까운 이용자가 생길 태세란다. 대체 왜, 란 궁금증이 도졌다.

아이폰 사용기를 찬찬히 뜯어봤더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알고자 하는 욕망, 소통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지녔다. 다른 사람들이 몇 모여 뭔가 소곤대고 있으면 어떻게든 들어보려 머리를 들이밀고, 거기서 들은 얘기에 해석을 보태 남에게 퍼뜨리고 싶어하는 게 자연스런 인간의 욕구다. 그런 점에서 무선 인터넷이 공유되는 공간이면 어디서든 남이 제공한 정보를 습득하고,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해서 그 정보를 재생산해 공유 공간에 뿌릴 수 있는 도구가 생겼다는 건 소통의 욕망이 해방됐다는 의미다. 한국 이동 통신사들이 휴대전화에서 인터넷 공유 기능을 삭제하는 바람에 꽁꽁 묶여있던 그 욕망 말이다.

미디어에 의해 억눌려왔던 '날것'에 대한 욕망도 해방됐다. 이제까지 미디어는 하나의 권력기제로 작동해왔다. 신문과 방송 등은 정보를 독점해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뒤 대중에게 일방 통보 식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지위를 누려왔다. 때론 미디어의 의도가 가미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뉴스를 알고 싶어하던 대중의 욕망이 통제돼 왔던 셈이다. 하지만 아이폰을 통한 실시간 블로깅과 트위팅은 미디어란 존재 밖에서도 사람들이 뉴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을 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거름종이로 걸러지지 않은 정보의 속물성이 가끔 문제되긴 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생동성이 가진 장점도 만만찮다.


실시간 블로깅과 트위팅이 ‘오피니언 리더’란 단어를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한 분야에 깊은 견식을 가진 전문가가 대중 여론을 움직이던 시대에서 대중들의 관점이 하나씩 모여 집약되면서 형성되는 ‘집단지성’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다. 이때 위에서 말한 정보의 속물성은 집단지성의 작용으로 자연스레 걸러지고, 다중의 견해가 언론사의 데스크 역할을 하며 날것 그대로의 생동성을 정제하게 된다. 지식권력의 위계가 정보 공유의 평등성에 의해 서서히 붕괴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서 있는 셈이다.

시대변화는 이렇게 좇기 숨 가쁠 정도인데, 한쪽에서 들리는 소식은 마치 과거의 얘기인양 시간이 분절된 채 들려 공허하기만 하다. 세종시 수정론자들의 주장에 주요 논거로 등장하는 수도 분할로 인한 비효율성 얘기다. '수도를 분할하면 공무원들이 서울과 행정수도를 오가느라 교통비 등이 연간 1200억여원 들것'이란 분석은 직접 면대 면으로 보고를 해야하고, 보고 내용과 함께 절차와 격식이 결재 여부에 반영되는 고답적 '공무원 문화'가 포함된 산술인 듯 싶다. ‘부처가 가까이 있지 않으면 소통 미흡 등으로 연간 3조원에서 5조원이 낭비될 것’이라는 분석에는 평소 과도한 실적 경쟁과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이뤄지지 않았던 부처 공조의 부재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지 않았다. 대중과 그를 둘러싼 인프라는 실시간으로 변하는데, 대중이 속한 국가를 움직인다는 이들은 저렇게 역주행하고 있는 셈이다. 아날로그적인 레이트 어댑터의 눈에도 과거 회귀적이기만한 그들의 퇴행을 과연 뭘로 설명해야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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