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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18

 

초등학교 때 TV를 켜면 명절의 성룡 영화만큼이나 '똘이장군'이 자주 방송을 탔다. 똘이장군은 '김일성 동지'란 이름의 붉은 돼지와 싸웠다. 똘이장군이 돼지를 물리치면 왠지 "똘이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란 주제가를 따라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뒤로 '김일성'과 함께 '동지'란 단어를 쓰려면 왠지 주변을 돌아봐야할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각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요즘은 가끔 기사를 쓰다 '노동자'란 단어를 고를 때 왠지 쭈뼛거리는 나를 본다. 기자 초년병 시절 ‘노동자’란 단어를 쓰면 몇몇 데스크들은 혀를 차며 '근로자'로 고쳐 썼다. 법전에 등재된 '근로자'란 단어가 신문의 공식 용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공식은 신문마다 달랐고, 때론 같은 신문에서도 들쭉날쭉했다. 누가 공식화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유도 모르고 잊혀졌거나 침묵의 동의 아래 색깔이 덧칠해진 금기였던 셈이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오세아니아’란 가상국가의 신어(新語) 사전을 편찬하는 ‘사임’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신어의 목적이 사고의 폭을 줄이는 것이란 건 알고 있나? 그렇게 하여 우리는 사상범죄의 발생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라네. 그걸 표현할 말이 없어져 버리면 사고의 폭 또한 좁아지기 때문이지." 오웰은 언어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사람들의 인식과 관념을 지우고, 입맛에 맞게 세상을 재창조하려는 권력의 의도를 직설적으로 꼬집었던 셈이다. 


말을 만드는 자는 자신의 욕망을 투사한 언어로 타자를 배제하고, 말을 쓰는 자는 언어에 의해 파생되는 태도를 통해 만드는 자의 의도대로 통제된다. ‘아직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여성’이란 의미의 ‘미망인(未亡人)’, ‘집에 있는 사람’이란 뜻의 ‘집사람’ 등의 단어가 가부장 상위의 권력관계를 바탕으로한 남성적 사회가 창조한 것들이라는 게 한 예다. 만약 ‘자유’란 기표가 없는 세상에서 자유의 기의를 떠올리는 게 과연 가능할까, 상상하면 소름이 돋기도 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2일 '지붕 뚫고 하이킥'에 등장하는 해리(진지희)의 유행어 '빵꾸똥꾸'에 권고 조치를 내렸다. 해리가 왜 그런 표독스런 말을 줄곧 내뱉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15세 이상 관람가 방송에서 부모와 함께 대화로 그 맥락을 배우는 아이의 모습은 심의위의 상상 밖이다. "어린이 시청자들의 올바른 가치관과 행동양식 형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권고 이유에는, ‘1984’의 ‘오세아니아’와 같이 말을 삭제함으로써 가치관과 행동을 권력의 통제 기준대로 획일화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일 뿐이다. 그래도 똘이장군을 떠올리며 소름이나 돋는 나 같은 소인배보다, "빵꾸똥꾸를 징계한 빵꾸똥꾸들"이라며 썩소 짓는 대인배가 더 많은 여기저기의 우리 모습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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