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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중의 소리

사진은 '민중의 소리'에서 퍼왔습니다


 

이재훈의 인앤아웃 no.19 


그는 내내 굳건한 표정이었다. 옆자리엔 그의 아내가 고개를 숙인 채 검은 목도리 위로 눈물을 뚝뚝 떨궜다. 영하의 찬바람 탓인지 눈물은 목도리 위에 한참 응결졌다. 그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서러움을 보듬으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때 영결식 무대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그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다함께 외쳐봅시다. 여.기.사.람.이.있.다!" 순간 그의 얼굴 근육이 꿈틀댔다. 355일 전 그날, 망루에서 먼저 몸을 던진 뒤 뒤이어 뛰어내릴 줄 알았던 아버지와 동료 4명이 불길에 갇혀 내질렀던 절규가 떠올랐을까. 그는 질끈 눈을 감았고, 눈꺼풀 사이에선 눈물이 툭 떨어졌다.


이충연씨는 9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에서 그렇게 아버지 이상림씨를 보냈다. 아버지는 용산 남일당 뒷건물 상가에 세들어 20년 넘게 갈빗집을 했다. 건물이 낡아 장사가 안 되자 큰 맘먹고 빚을 내 내부 장식을 고치고 호프집을 열었지만 2년 만에 재개발이 밀어닥쳤다. 빚은 남았고, 갈 곳은 없었다. 살기 위해 버텼지만 결국 그 버팀이 죽음으로 내몰린 이유가 됐다. 충연씨는 함께 버틴 '죄'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3박4일 구속집행 정지 허가를 받아 부친상을 치른 충연씨는 10일 새벽 다시 서울구치소로 돌아가야했다.


서울역을 찾은 5000여명의 추모객에게 인사하는 어머니 전재숙씨의 목소리에는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지옥 불구덩이에서 뛰어내리다 허리와 다리를 다친 충연이가 3박4일 상중에도 내내 침을 맞고 진통제를 먹었습니다. 못 멕여서 가뜩이나 몸이 자그마한 막내를 차가운 감방으로 돌려보내야하는 에미의 마음이…" 쇳소리가 목에 턱 걸리더니,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절실함은 쉽게 전달되기 어렵다. 누군가가 절실함을 절실함 그대로 강하게 표현하면 절실해질 때까지의 과정을 함께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은 마냥 의아해 할 뿐이다. 그 의아함이 집단적인 절실함과 부딪힐 때 우리는 그 절실함을 '광기'로 몰아붙이며 '정상'적인 우리와 광기 어린 그들을 구분짓고 외면한다. 그런 사회에서 "장례식 뒤에도 용산을 잊지 말자"란 애절한 외침은 왠지 허허롭게만 들린다. 영결식이 끝날 무렵 잔뜩 찌푸렸던 하늘도 물을 떨궜고, 그 물은 어느새 눈으로 응결져 땅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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