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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20

장발장은 빵을 훔치고 19년간 감옥살이를 해야했다. 지금 다시 법정에 그를 세운다면 굶어 죽을 수 없었던 절박한 선택과 그 반대 급부에 서 있는 빵 주인의 경제적 손실을 두고 법리 논쟁이 펼쳐질 것이다. 이때 법은 절실한 처지를 동정하는 시각을 배제하고 절도죄라는 법리로만 그를 구속할 수도 있고, 경제적 손실만 갚으면 절도 행위 자체는 감면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의만으로 판단하는 법정에서라면 그는 단연코 무죄다. 굶어 죽음으로 인한 생명의 손실보다 우위에 설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법원과 검찰이 용산사건 수사기록 공개를 두고 충돌하고 있다. 수사기록 공개 여부의 열쇠를 쥔 형사소송법을 두고 법리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법리 다툼 뒤에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어온 법원의 공판중심주의에 반발하는 검찰의 권력 독점의지가 숨어있다. 법원은 검찰과 피의자가 법정에서 동등한 당사자가 돼 법리를 다퉈야한다는 전제 아래 재판이 열리기 전에 피의자에게 수사기록을 공개하길 원한다. 반면 검찰은 국가기관으로서 가지는 수사권이 피의자인 국민의 방어권보다 우월한 지위에 서길 바란다. 검찰에겐 피의자가 아니라 법원이 동등한 위치에 서야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찰에게 수사기록은 그들만의 수사권으로 법을 집행해 '정의 구현'이란 표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독점돼야할 도구다.


자크 데리다는 '법의 힘'에서 법은 계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지만 정의는 단순 계산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봤다. 법은 정의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없으며, 법 조항을 핑계로 정의와 불의를 나누는 것은 기계적 규칙의 적용일 뿐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정당한 법적 권한을 통해 이뤄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면에서 정의와 불의가 구별되지 않고 충돌함을 볼 수 있지 않았던가.


권력은 독점될수록 독점하는 주체의 이익에만 복종한다. '정의'로 포장된 검찰의 권력에는 현 정부의 법치주의에 부합하는 효율적 통제 의도가 담겨 있다. 장발장의 절도 행위를 불러온 그의 처지를 살펴보는 절차는 명시적 범법과 그로인한 '악'의 처벌만을 정의로 보는 효율적 통제기제 아래에선 굳이 거치지 않아도될 불편함일 뿐이다. 7년 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정치로부터 독립'을 외쳤던 검찰이라면 권력 분립과 견제가 그런 까닭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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