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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21

MBC '지붕뚫고 하이킥'이 내달 1일 100회를 맞는다. 일주일에 닷새, 20% 넘는 시청자들이 배꼽잡고 방바닥을 뒹굴게 만드는 지붕킥의 힘은 각자가 주인공이라 할 만한 캐릭터들을 잘 짜놓은 텍스트에서 나온다. 장인에게 뺨 맞고 가정부에게 분풀이하는 정보석의 극소심에선 상사의 히스테리를 부하 직원에게 고스란히 갚는 직장에서의 우리 모습이 읽힌다. 여배우로선 치명적이게도 콧구멍을 벌름대고 분노하며(그것도 HD화면에다!) 속에 있는 말을 몽땅 내뱉는 황정음에겐 다소곳한 태도를 강요받아온 여성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대상을 막론하고 내 편이나 "내 꺼"가 아니면 내지르는 '빵꾸똥꾸'로 근엄한 뉴스 앵커까지 웃겨버린 해리는, 할 말은 하는 이들은 되바라졌음을 이유로 팽당하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지붕킥의 짜임새는 그뿐이 아니다. 중산층 꼭대기에 있는 이순재 가족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절약을 위한 고통분담을 빌미로 가정부 신세경을 동원해 화장실 물까지 아끼게 만든 엄격한 가부장 이순재는, 소유하지 못한 욕망의 대상인 여자친구 김자옥에겐 단박에 99만원짜리 모피코트를 지르는 이중성을 지녔다. 경제적으론 더 풍요롭지만 신애보다 공부를 못하는 해리를 윽박질러 미래를 위해 경쟁하게 하는 보석 부부의 극성은 경제적 지위보단 학력 중심의 사회적 지위가 우리에게 여전히 우월한 가치임을 드러낸다.

이순재 가족의 이런 속물성은 소외계층에 속한 '내부의 타자' 세경-신애 자매를 통해 찬찬히 관찰된다. 복잡한 정치구도에 대한 거부감과 달리 우리가 그런 이데올로기적 계급 배치를 불편하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건 일단 지붕킥의 유려한 풍자와 해학 덕분이다.

하지만 불편하지 않음의 본질은 세경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 있다. 지붕킥에서 유일하게 웃기지 않고 처연하게만 그려지는 세경을 본 우리는, 비록 그녀에게 불쌍하다며 동정을 보낼지언정 그녀를 우리 모습으로 대등하게 환원하진 않는다. 부자로 잘 살면서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속물적인 이순재 가족과 우리를 동일시하든지, 차라리 명세서를 보고 후회할 지라도 카드를 마구 긁어대는 정음의 모습에서 우리 모습을 찾을 뿐이다. 세경은 결국 드라마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의 우리에게도 배척돼야할 타자인 셈이다. 하긴 동생 신애마저 언니를 동정하면서도 언니처럼 살긴 싫다고 하지 않던가.

김병욱 PD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세경이의 슬픈 이야기를 하는 게 코미디를 만드는 것보다 즐겁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인물은 비현실이면서도 현실이다. 텍스트에는 텍스트를 유도한 객관적 사회조건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비현실이라고 타자화하는 순간, 속물성은 우리 안에서 가볍게 인정되고 깔깔 웃으며 본 코미디란 표상만 남게 된다는 점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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