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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22

소녀들이 'oh'빠를 외치자 삼촌들은 좌절했다. 삼촌들을 버리고 오빠에게 간 소녀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을까. 아닐 것이다. 삼촌들은 안다. 오빠로 불리지 않아도 '오빠'의 위치에서 소녀들의 소몰이춤에 열광할 수 있다는 걸. 소녀들은 어차피 현실의 연애 상대가 아니니까 말이다. 나이에 맞춰 어리게 보여야 할 필요도, 외모에 맞춰 짐승 같은 복근을 가져야할 의무도, 그들에겐 없다.


알아서 해군 제복을 입고 삼촌들의 군대 트라우마를 순식간에 '치유'해주거나('소원을 말해봐'), 치어리더로 변신해 근육을 부딪히는 삼촌들만의 세계에 복종하는('oh!') '착한' 소녀들 아닌가. "10분 만에 널 유혹할 수 있다"며 홀로 서서 "나만 바라봐"를 강요하던 이효리와 달리 취향에 따라 9명 중 한 명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친절함'까지 갖춘 소녀들에게 배신감 따윈 당치 않다. 여기까진 기획사가 마초들의 성적 욕망을 배설할 수 있게 교묘하게 짜놓은 텍스트.


정작 여기서 멈추지 않는 건 삼촌들이다. 소녀들의 섹시함에 성적 욕망을 품으면서도 그 욕망을 '순수'로 세탁하는 데 집단 동조한다. 최근 한 만화가가 소녀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성적인 묘사를 해 공분을 샀던 사건이 한 예다. 기획사는 한 술 더 떠 이 만화가를 성희롱으로 고소하겠단다. 만화가의 의도와 작법에 전혀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더 눈길이 갔던 건 삼촌들과 기획사의 묘한 카르텔이다. 아니, 소녀들을 ‘사수’하겠다며 스스로 들고 일어선 삼촌들과 뒤에서 입 가리고 킥킥대고 있는 기획사의 희한한 지형이 더 정확하겠다. 소녀들의 '섹시함'에 은근 열광하면서도 "섹시해!"라고 외치는 개인에겐 집단 뭇매를 가하는 삼촌들의 이 이중적 욕망을 과연 무엇으로 해석해야할까. 우리는 정말, 소녀들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걸까.


연예기획을 통해 유통되는 자본은 무섭다. 자본은 스스로 소녀들에게 노골적인 섹시 코드를 덮어씌워 놓고 '우리가 아니라 이 아이들을 음흉하게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이 죄악'이라며 쏟아질 비난을 비켜간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자본의 코드에 스스로 종속돼 집단의 도덕률을 만들어 놓고 그 도덕에서 일탈한 개인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군중이다. 욕망은 n개의 개별적 욕망 그대로 머무를 땐 존중이나 비난의 대상이 아닌 욕망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욕망이 선악의 도덕으로 포장돼 타자를 배척하는 도구가 되면, 우리는 그걸 집단의 패악질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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