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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23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했다. 그는 짜맞춘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하는 대학 공부가 노동계급인 양부모가 준 학비에 견줄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6개월 만에 자퇴했다. 잡스는 그 뒤 관심 있는 강의만 도강하며 배운 서체 디자인을 초기의 역작 매킨토시에 녹였다.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해고당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는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해고로 인해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했다"며 그때를 돌아봤다.


'스티브 잡스'가 다시 키워드다. 스탠퍼드대 졸업식과 아이패드 소개 연설 동영상은 스크랩 1순위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네트워킹의 일상화를 가능케하고 새로운 '애플 매트릭스'를 창조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런데 뜬금없는 소식이 들렸다. 지식경제부가 4일 보도자료를 내고 실무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 육성을 위해 기술경영 전문 대학원과 일반대학원 설립 지원 등에 77억 원을 투입해 '한국판 스티브 잡스'를 키우겠다고 밝혔다. 영화 '아바타'가 열풍을 일으키자 정부 홍보 동영상 제작 대행사에 3D 영상을 만들어달라며 공적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후배 얘기에 씁쓸해하던 참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보도자료에 나온 말들을 곱씹어보니 이물감은 더 커진다. 보도자료는 결국 '대학원'에서 실무'능력' 배양으로 전문성 있는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국가 주도의 '고급 교육'으로 국가적인 부의 증식을 위해 '쓸모'있는 존재를 기계처럼 '생산해내겠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잡스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애플의 창의적 디자인과 기존의 IT세계를 전복시킨 창조적 상상력은 학력 위주로 서열화한 고급 교육에서 오는 것도, 국가의 시스템에 복종하면서 '쓰임새' 있는 인재로 '제조된' 수동적 존재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정책이 '잡스 열풍'에 편승해 억지춘향 격으로 꿰맞춘 느낌이 드는 까닭이다.

상상력은 해체로부터 파생된다. 주어진 삶의 시간적 속박은 물론 정신적 구속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토대가 없으면 상상력은 꽃피기 힘들다. 일제고사의 획일적인 줄세우기로 전국의 아이들 중에 나는 몇등인지 고민해야 하며, 시인의 개별적 상상력이 담긴 시어를 교과서와 참고서가 설명하는 하나의 의미로만 해석하길 강요받는, 그런 아이들에게는 애초 보편적 가치기준에서 해방된 상상력은 발을 디딜 틈이 없다. 게다가 온 신경을 쏟아 들어간 대학과 대학원에서마저 많은 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개별적 연구보다 교수가 원하는 연구보조에 더 힘을 기울여야하지 않던가. 교육의 뿌리에서 상상력의 근원을 거세해놓고, 잎사귀에만 공적자금이란 물을 뿌리는 정책 환경에서 '한국판 잡스'의 탄생은 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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