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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24

고교생들이 중학생 후배들을 불러놓고 졸업식 뒤풀이를 했다. 살갗이 찢어질듯 한 날씨에 옷을 벗으라고 강요한 것도 모자라 망설이는 아이들의 교복을 가위로 잘라내기도 했다. 가해 학생 중 일부는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살갗을 에는 고통보다 피해 학생들은 그들 앞에 온몸이 까발려진 상황이 준 수치심, 그리고 그 수치심이 그곳에 머물지 않고 세상 전체로 공유됐다는 점에서 정신적 충격이 더 컸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대체 무엇이 가해 학생들의 광기 어린 폭력적 일탈을 불렀을까 생각하면 막막함이 깃든다.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은 대체로 가해 학생들 자체에 대한 분노다. 여기에 '철없는' 혹은 '배려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극악한 10대들이라는 키워드가 분노에 담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분노가 나아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공공의 권위에 대해 일말의 존경심도 없는, 지독히 말을 듣지 않는 10대라는 세대담론으로 뭉뚱그려 보편화한다는 점이다. 이 담론엔 가해 학생들의 광기와 폭력과 일탈을 낳은 사회적 배경, 그리고 그 사회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어른의 책임에 대한 고민은 쏙 빠진다.

좋은 세대담론과 나쁜 세대담론은 구분되지 않는다. 세대담론은 곧잘 한 세대의 일부 부정적 특성만 보기 좋게 추려내 공론화하고, 그들의 문제를 철저히 타자화한 뒤 한국 사회라는 보다 넓은 공간의 문제로의 지형 확대를 미리 방지한다. '88만원 세대담론' 때도 그랬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20대는 소위 '개새끼론'에 휩싸였다. 어른들은 줄세우기 교육에 분노한 10대들이 촛불을 들었을 때 20대들은 토익책을 들고 도서관에 처박혀 자기계발에만 집중하지 않았느냐고 질타했다. 왜 사회 전체를 위한 일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지 않았느냐'고 가르쳤다.

88만원 세대들이 서로 주고받은 인터뷰를 모아 만든 책 '요새 젊은 것들'에서 소설가 김사과(26)는 "세대가 보편성을 가지려면 '중산층 문화'라는 것이 있어야될 텐데, 워낙 양극화가 심해지다 보니 한 세대 안에서 보편성을 가지기가 힘들어진다. (세대 안에서도) 계층별로 나누어져 있고, 그래서 이것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 자체가 더 폭력적"이라고 말했다. 세대담론으로 사회 전체의 모순을 그들만의 당사자 문제로 구별지은 뒤 쯧쯧 혀만 차고 있기보다 알몸 뒤풀이를 하는 10대에겐 어른들의 폭력성이, 짱돌을 들지 않는 20대에겐 짱돌을 쥘 여유조차 주지 않은 사회의 억압이 거울처럼 투영되고 있진 않은지부터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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