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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신문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6

꽃다운 13세 소녀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빈집에서 성폭행당하고 무참히 살해됐다. 범죄의 잔혹성과 제대로 피어보지 못한 소녀에 대한 안타까움에 전국이 들끓었다. 피의자 김길태(33)씨는 10일 체포된 뒤 경찰에 압송되는 과정에서 1000여명의 시민에게 증오가 담긴 욕설을 들었다. 한 시민은 그의 뒤통수를 내려치기도 했다. 김씨의 DNA와 소녀의 시신에서 발견된 타액의 DNA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가 범인일 확률은 95% 이상이다. 경찰은 자백으로 남은 5%를 채우려 할 것이고, 죄의 확정은 증거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법원의 몫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압송 과정에서 김씨의 얼굴이 공개된 것에 논란이 일었다. 20명의 노인과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40)도 2004년 수사과정에서 얼굴이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이는 형사소송법상 무죄추정원칙과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책임의 원칙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도 2005년 10월부터 훈령으로 피의자 신원공개를 금지한 '인권보호수사준칙'을 만들어놓고 수사과정에서 언론 등에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 왔다.
현재 국회에서 ‘흉악범 얼굴 공개’에 관한 특별법이 논의되고 있는 건 그렇게 법적 절차가 엄연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경찰이 김씨의 얼굴을 공개한 것은 헌법과 형법, 그리고 자신들의 준칙을 무시한 결정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김씨는 특수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경찰이 김씨 검거를 위해 공개수배로 전환하며 김씨의 얼굴은 이미 대중에 공개돼 있다. 김씨의 얼굴은 긴급을 필요로 하는 피의자 검거에 우선적으로 얼굴을 공개해 혹여나 일어날 수 있는 추가 범행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에 의해 공개됐다. 그러니 이미 경찰 수사에 의해 검거된 상태에 있었던 유영철이나 연쇄살인범 정남규(41), 강호순(41) 사건 때 있었던 '흉악범 얼굴 공개' 논란과는 별개의 사안인 셈이다.

논란이 될 수 없는 것이 논란이 된 건 보수언론과 경찰이 증오의 감정이 끓어올라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된 것을 호기로 삼아 자신들의 욕망을 무차별적으로 표출하고 있어서다. '더이상 (얼굴을) 가려주지 않는다'(조선일보)고 응징의 의미를 담거나, 수사과정에서 '샤워하고, 자장면 먹고, 푹 잔 것'이 '소름 끼치게 뻔뻔하다'(문화일보)며 자극적 증오가 담뿍 담긴 제목이 난무했다. 강호순 때 지면에 얼굴을 공개한 덕에 드디어 흉악범 얼굴 공개에 성공했다고 앞다퉈 자화자찬까지 하고 나섰다. 그러자 경찰도 보수언론의 장단에 발맞춰 국회에서 절차를 밟고 있는 법을 외면하고 사안별로 흉악범 얼굴 공개를 하겠다고 맞장구쳤다. 이때 정부와 경찰이 누차 강조하고 있는 '법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잔혹한 범죄, 특히 꽃다운 나이의 소녀에 대한 범죄는 범죄자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놈 얼굴 한 번 보자"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언론을 통한 얼굴 공개로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된다고 해서 앞으로의 범죄는 예방되지 않는다. 그저 말초적인 호기심만 충족시킬 뿐이다. 유영철이나 정남규, 강호순과 같은 사이코패스는 언론에 얼굴을 공개하는 것 정도로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에겐 그게 공개 망신조차 못 된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말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한 성폭행범이나 연쇄살인범은 신속히 사형을 집행해야한다"고 해도 미래에 범죄를 저지를 사이코패스는 '사형'이 내포하고 있는 죽음의 공포를 대단한 것으로 느끼지 못해 역시 범죄 예방효과가 없다. 사이코패스는 보통 어릴 때 입은 일종의 트라우마에 의해 타자의 공포나 고통에 공감할 때 작동하는 뇌의 전측대상회피질이 손상돼 있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온 적이 있다.

그들에게 증오를 느낀다면 그 증오를 풀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다. 감옥에 두고 반복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해 비슷한 성향의 사이코패스 범죄를 방지하는 데 그들을 철저히 '활용'하는 것이다. 증오의 단순 표출만으론 범죄를 낳은 사회의 기형적 모순을 치유할 수 없다. 치유되지 않은 모순은 결국 미래의 범죄 재생산에 기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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