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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27

 

"제가 감옥버스를 타려할 때 절 부르셨죠. 야첵! 이라고. 전 스물한 살이나 먹었는데 절 부르는 소리에 눈물이 났어요", "재판할 때도 여러 번 불렀지 않나", "그 전엔 들리지 않았어요. 그땐 모든 사람이 절 비난하고 있었으니까."


영화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야첵은 별다른 까닭 없이 택시기사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끝내 사형 당하고 만다. 어린 시절 여동생의 죽음으로 강한 트라우마를 안게 된 그는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킨 채 자기 안의 세계에서만 살았다. 외부의 요인에 의해 생긴 충격을 다시 받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방어적으로 온몸을 옹송그렸다.


하지만 내부로의 고립이 점점 깊어질수록 살아야할 이유는 점점 상실하게 됐다. 아무 잘못 없는 택시기사를 살해하고도, 야첵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죄책감이란, 타인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체의 윤리를 깼을 때 그 일탈을 정당화하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가지는 감정이다. 공동체에 어울리지 못하며 21년 동안 남에게 제대로 된 부름조차 받아보지 못한 야첵에게 죄책감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야첵을 사형시킨 사회와 권력은 사형이란 극단의 처벌로 강점하게된 지배 범위를 야첵이 아니라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대중에게 뻗치게 된다.


심리학에는 '공정한 세상 이론'이라는 게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착한 사람에겐 좋은 일만 일어나고, 좋지 않은 일은 나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식으로 공정하다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일컫는다. 열심히 공부하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출세해야 하고, 열심히 일하면 그렇지 않은 동료보다 먼저 승진할 것이라는 믿음은 그런 심리에서 기인한다.


흉포한 범죄자를 향한 강력한 비난은, 범죄 피해라는 좋지 않은 일이 '착한' 사람에게 일어난 상황에 의해 저 심리가 흔들리면서 혼란을 느껴 등장한다.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데 강력한 비난이 범죄자를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공정하던가. 공부만 열심히 하면 그렇지 못한 아이보다 성공할 수 있고 일만 열심히 하면 동료보다 먼저 승진이 보장돼 있던가. 


사형이라는 극단의 처벌은 그래서 등장한다. 권력은 일탈자에 대해 '정당성을 갖춘 살인'으로 목숨을 빼앗고 그들을 철저하게 응징함으로써 사실은 사형수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가한다. 위축된 우리는 사형수의 죽음이란 강렬함은 뒤에 두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일탈자를 배제함으로써 다시 한 번 공정해졌다고 믿고 만다. 권력은 그렇게 통치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공정하지 못한 사회의 모순은 은폐된다.

한 사람이 타인을 죽이는 살인 행위나 4500만명이 한명의 범죄자를 죽이는 '공동 살인' 행위는 본질적으로 별반 차이가 없다. 세상엔 '정당한 죽임'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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