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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28

지난해 10월부터 지하철과 보행로 곳곳엔 '우측통행' 게시글이 붙어있다. 국가는 '보행속도 증가'와 '심리적 부담 감소', '보행자 안전'과 '글로벌 보행문화 정착' 등을 시행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 나가보면 우측보행을 엄숙히 따르며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들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좌측보행이 왜 우측보행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마저 그다지 없다. 왜 그럴까.


국가가 명령을 내리면 무조건 따라야만 전체가 발전할 것 같던 때가 있었다. 긴 머리를 자르라면 잘라야했고, 미니스커트를 입지 말라면 입지 않아야했다. 긴 머리와 미니스커트가 왜 국가 발전에 방해가 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강력한 국가의 처벌은 의문의 발설조차 막았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이제 전복됐다. 우측보행의 시대에 왼쪽으로 걷는다고 해서 처벌받을 정도로 시대가 엄혹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무엇보다 지금 한국 사회 개인들은 국가의 명령대로 시스템화해 움직이지 않는다. 이때 통제를 통해 국가의 효율적 작동을 추구하는 명령권자와 그들의 브레인인 보수주의자들은 혼란에 휩싸인다.


그 혼란의 중심에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통제에 종속되지 않는 개인들을 바라보며 대체 그 까닭이 무엇인지 골몰했을 것이다. 체계적 복종을 강조하는 군사정권에서 '검사 동일체의 원칙'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그에게 시스템을 거부하는 개인은 인식 밖의 대상이다. 이때 등장하는 그의 풀이법이 바로 한국 사회에서 타자화의 대명사로 줄곧 쓰이는 '좌파'다. 그의 머리에 '좌파'는 국가의 발전에 무조건 발목을 잡고, 언젠가 국가를 전복시키고 말 암적 존재다. '좌파 교육 때문에 성범죄가 발생'하고, '좌파 스님 때문에 정책시행에 발목 잡힌다'는 발상은 인식 밖의 대상을 배제하기 위해 활용된다. 그가 이번 사태로 '묵언 수행'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좌파교육 때문에 우측보행도 안 된다'는 말을 내뱉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는 개인이 한국 사회에 온존하는 건 안 대표의 머릿속에 개념화해 있는 '좌파' 때문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로 인한 것이라고 보기에도 온전히 풀이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개인이 스스로 살아남아 자본에 이바지해주길 바라는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논리가 작동함을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 자본은 개인에게 스펙쌓기를 통해 지식을 스스로 쌓고, 몸짱이 돼 건강도 스스로 관리하고,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통해 인성마저 스스로 갖추라고 요구한다. 국가는 더 이상 그런 걸 갖추지 못한 개인을 보살펴주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자기계발 논리에 개인은 힘겹게 허덕이면서도 어느덧 익숙해지고 말고, 국가의 권위도 잊게 된다.


국가의 시스템에 따르지 않는 개인들을 보기가 버거울 때 안 대표가 타파할 대상으로 삼아야할 건 그래서, 실체도 명확지 않은 그의 인식 속 '좌파'가 아니라 바로 자본이다. 사면장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텐데 버젓이 '1등 기업' 총수로 복귀한 누군가가 뒤에 서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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