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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9


한국은 평등주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했던 국가다. 1960~70년대 새마을운동의 구호는 '다함께 잘살자'였다. 모두가 최저생존권조차 갖추기 힘들었을 때 이 구호는 강력했다. 나의 이익보다 '조국'의 발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면 모두가 잘 살게 되리란 믿음이 그땐 있었다. 야간 통금과 장발 단속 등 일상적 자유에 대한 억압은 평등의 가치에 대한 신화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다고 믿어졌다. 70년대 초반 고교평준화 실시, 개발제한구역 설정 등과 같은 국가 제도는 평등의 가치를 전유하기 위해 등장했다. 하지만 70~80년대를 거치며 기승을 부린 부동산 투기붐은 평등의 신화가 해체되는 시작점이었다. '다함께 잘사는' 세상은 온전히 오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 이후 신자유주의 경쟁체제가 확립되며 평등의 신화는 완전히 붕괴했다. 개인은 고교평준화의 가치를 무시한 채 월급의 절반 이상을 사교육에 투자해 '남의 자식을 짓밟아야만 네가 살 수 있다'는 가치를 자식에게 주입해야 했다. 부동산 투기붐으로 배신당한 개발제한구역의 가치는 재건축과 재개발에 대한 열망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딱 하나 평등 신화의 가치가 남아있는 체계가 있다. 바로 군대 문제다. 두 번의 대선에서 아들이 병역의무를 다 하지 않은 유력 후보가 떨어지고, 병역비리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무는 대중의 심리에는 평등 신화의 붕괴에 대한 절박함이 전이돼 있다.


천안함이 침몰하며 46명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군은 침몰 원인과 사건의 전말에 대해 무엇 하나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찔끔찔끔 내놓는 발표마저 사실관계에서 오락가락하고 부이(침몰 위치 표시) 설치 여부와 열상감지장비(TOD) 최초 촬영 시각, 침몰 사고 발생 시각 등이 거짓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며 의혹 증폭을 되레 부추기고 있다. 대중은 안다. 군이라는 상징체계 안에 보안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로 작동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중이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보안의 장막을 거두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대중이 더 이상 국방의 의무를 신성한 가치라고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상징하는 것 같다. 대중은 이제 복종하지 않았을 때 내려질 강력한 법적, 사회적 배타성이 두려워 국방의 의무를 따를 뿐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겠다는, 강요된 이데올로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법적, 사회적 배타성을 뒤엎을 수 있는 권력과 재력을 가지지 못한 소시민들이 더 그렇다. 국가가 더 이상 개인을 보살펴주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국가와 제도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소시민들은 내 아들과 내 오빠와 내 형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할 까닭을 더 이상 찾지 못한다. 벼랑 끝 평등의 가치가 무너지고 국가가 더 이상 안전망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대중은 국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접게 된다.


대중이 사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은 건 오래 됐다. 아니 처음부터 신뢰 자체는 주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지율이 여전히 높았던 건 그래도 그가 이끄는 정부가 국가 경제를 성장시키면-지금 이게 가능한 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해두자- 그 성장의 결과물이 개인에게 환원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도덕성이 있든 없든, 국정운영 철학이 있든 없든, 정치적 일관성이 뚜렷하든 말든, 약속을 지키든 말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군대를 바라보는 평등 가치가 점점 상실되는 것에 더해 내 가족의 목숨을 잃게 하고, 그 까닭조차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정부와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국가와 이명박 대통령 둘 모두에게 신뢰를 잃게 되는 결과가 다가오는 이유다.


4대 강을 파고, 세종시 약속을 뒤집으며 신뢰를 잃을 거라 생각됐던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전히 50%에 육박했다가 침몰 사고 이후 10% 가까이 깎였다는 뉴스가 새삼스럽지 않은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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