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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31

 

그는 20년 삶을 간단하게 돌아봤다. 초등학교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살아왔고, 결국 남들이 명명하는 '명문대'에 합격했다. 다들 그렇게 살았으니까 당연한 줄 알았다고 했다. "이미 주어진 하나의 정답 앞에 물음은 의미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문득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친구들과 전부 똑같은 것을 위해 경쟁해야 하는지, 왜 수많은 아이들이 패배자가 되어야 하는지, 왜 이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야하는 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신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에 대한 첫 회의였다. 회의 끝의 선택은 강요된 이데올로기, 즉 명문대에서의 이탈이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선언을 남기고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24)씨는 이후 숱한 되물음에 시달렸다. '전태일의 일기를 보는 것 같다', '사람임을 재확인하고 선포하는, 봄처럼 아픈 절규'라는 감흥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모르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치기'로 보는 배제적 시각, '명문대 출신이니 파장을 던질 수 있는 것'이란 냉소도 있었다.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며 적당한 거리두기로 착하고 매너있게 관계를 유지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처세적 관점도 돌아왔다. 감흥은 부담이 됐을 것이고, 배제와 냉소와 처세는 아팠을 것 같다.

김예슬은 그저 물었을 뿐이다. 그 물음은 나를 둘러싼, 당연한 듯 여겨지는 외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향해있기도 하고, 그 담론에 복종하며 묵묵히, 그래서 '성숙하게' 살고 있다고 인정받는 내가 과연 진정한 나인지를 성찰하는 내부의 자아에 닿아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과 학교, 직장에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을 통해 규정된 삶의 틀에 그대로 안착하길 '부드럽게 강요'받는 방식으로 물음조차 거세당해 오지 않았던가. 물음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명문대를 욕망하는 한국의 특수성을 마치 보편적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믿음의 체계를 우리 스스로 구축해놓지 않았을까. 이제 막 시작한 김예슬의 회의와 이탈에 벌써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거나 냉소하거나 성숙하지 못한 처세라고 비판하는 건 그래서 학벌사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은 배제한 채 표상만 쫓는 이들의 가치 인정 방식으로 보인다.

선언 이후 김예슬의 고민이 책으로 묶여 배달된 날, 그가 거부한 대학의 총장인 신임 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이 "100억 정도 기부해 건물을 지어주면 2세나 3세에 대해 입학을 허용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는 뉴스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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