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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35

 

인간 광우병으로 알려진 변종 크로이츠-야코브병(vCJD)의 존재는 1996년 영국 정부가 처음 발표했다. 영국 정부의 광우병자문위원회 위원인 존 콜린지 교수는 이 병의 잠복기간이 최장 30년에 이를 수 있다고 2001년 말했다. 소의 장기와 뼈, 살코기로 만든 사료, 즉 동종의 육체를 씹어 먹고 자란 소의 고기를 섭취한 사람에게 이 병이 나타날 잠재적 위험성은 잠재적이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즉자적이면서도 가시적인 공포에 직면하지 않는 이상, 매일 밥벌어 먹으며 자신을 둘러싼 개별적 욕망의 충돌 속에 매몰된 채 벅차게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잠재적 위험성은 일상과 유리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근대 국가는 그래서 존재한다. 개인들이 인지하기 어려운 위험을 국가가 제도를 동원해 먼저 검증하고, 보호막을 쳐주길 개인들은 바란다. 검증되지 않은 위험성과 검증되지 않은 안전성이 동시에 존재할 때 국가가 먼저 살펴야하는 건 검증되지 않은 안전성이라는 게 시민들의 요구다. 2008년 5~6월의 촛불집회는 국가가 그렇게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발현됐다. 단순히 '진보' 정권에서 '보수' 정권으로 바뀐 데 대한 반발이 아닌 까닭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개인은 국가가 자신을 지켜주지 않고 내동댕이쳤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해왔다. 한나라당 의원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개그에 움찔하는 건 사실 '제 발 저리기'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한나라당 정권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왔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같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이고,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이라며 개인에게 위험성 검증의 책임을 떠맡겼더라도 시민들은 똑같이 촛불을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촛불은 좌나 우의 정치공학으로 호명할 수 없는, 근대국가 시민으로서의 상식적 요구와 신자유주의적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개별적 주체들의 목소리가 함께 터진 결과였다. 그리고 촛불의 소멸은 '나를 지켜주지 않는데다, 나의 목소리에 귀조차 기울여주지 않는' 국가에 대한 체념에서 나왔다. 여기서 조선일보가 여러 차례 기획기사를 통해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을 '좌파에 의해 선동됐다가 선동이 사실이 아님을 깨닫고 돌아선' 이들로 묘사하려는 분석이 얼마나 구시대 프레임인지 드러난다. 그들의 왜곡보도조차 그다지 성공적일 수 없는 이유다.

이 대통령이 11일 "촛불시위 2년이 지났는데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2년 전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반성했다"고 말했던 그는 왜 말을 바꿨을까.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그의 책 '사람vs사람'에서 이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 '"나는 나를 내리누르는 어떠한 힘 앞에서 굴복해본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이명박 같은 인물은 흔하지 않다. 쿨한 정도가 지나쳐 매사 쉽게 포기하고 타협해버리는 풍토에서 이명박처럼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당당한 사람을 보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 성향이 그 사람이 가진 거대한 사회적 권력과 맞물려 '통제 불가능한 파워'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면 찬찬히 따져볼 일이다.'

이 분석에 의지하면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고학으로 대기업 최고경영자를 지냈고,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내달리며 늘 '성공해왔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자신에게 '단 하나의 실패'로 기록된 촛불 트라우마를 제거하기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세계경제의 위기에도 재정지출을 대폭 늘려 성장률 수치를 올리는 일로 성공을 포장하는 국가의 모습에서도 성공이 아닌 실패는 받아들이기 힘든 그의 강박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것이고, 사람들은 선거에서 가끔 '매번 성공하는 사람'보다 '곧잘 실패해온 사람'을 뽑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광우병이 잠복했다 언젠가는 우리를 옥죌 공포라는 사실이 그의 발언에 의해 다시 자각하게 되는 역설이 발동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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