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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no.36

 

1996년 4월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양형섭 의장이 "한반도 전쟁은 시간문제라 위협했다"는 뉴스가 들렸다. 정부는 대북 정보감시 체제를 워치콘2로 강화했고, 미국은 북한에 "정전협정을 준수하고 도발행위를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이튿날 북한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 중무장 병력을 투입했고, 김영삼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으며, 공로명 외무부장관은 주한 미국 대사와 한.미 공조를 논의했다. 9일엔 공동 대응책 협의를 위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틀 뒤 15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렸고,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은 139석을 얻었다. 과반에 11석 모자란 승리였다.


14년을 건너뛴 20일, 한나라당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이라 결론짓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6.2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무력침범에 자위권을 발동하고 남북 교류를 중단하겠다"고 담화했다. 야당은 "북풍을 조장하려는 시도"라며 즉각 반발했다. '북풍'은 과연 14년의 간극을 두고 비슷하게 작동할까.


1996년 위기 때까지 대중에게 국가는 여당과 같은 의미였다. 단 한 번도 정권교체의 경험이 없던 시기에 야당이 국정운영을 하면 과연 한반도 전쟁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대중은 의문을 품었다. 북한의 공격에 의해 자신과 주변의 안위가 침탈될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의 표심에 일정 부분 북풍이 불 수 있었던 까닭이 됐다.


하지만 1997년 IMF 구제금융을 시작점으로 한국 사회는 크게 변화했다. 대중은 정치만으론 자신의 안위가 지켜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1998년 한국의 시장은 외국인 주식투자를 받아들이고 완전 개방체제를 가동하면서 외국인 투자 의존시대를 열었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한국 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한반도 위기다. 자본에게 '투자금 회수 불가'에 견줄만한 공포는 없다.


결국 이번 천안함에 의한 한반도 위기는 외국인 투자 회수를 불렀고, 그로 인한 주가폭락은 한국인에게 소유자본의 상실로 인한 경제적 안위의 추락을 야기하고 있다. 14년 전엔 경제적 손실없이 북풍이 효과를 낼 수 있었다면 지금은 북풍에 따른 결과로 엄청난 경제적 비용만 지불해야하는 시대가 됐다. 한 국가 체제 내부에서의 정치관계만이 대중의 삶이 영향을 받던 시대에서, 개방된 시장으로 인한 초국적 체제 안팎에서의 경제관계가 대중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되기도 했다. 결국 북풍은 국내의 선거 구도를 벗어나 초국적 경제체제를 살아가는 대중의 삶에만 악영향을 끼치는 것 아닐까. 


여당이나 야당이나 북풍에만 집중하는 선거 프레임은 그래서 시대착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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