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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안달했다. 지난 주쯤부터였다. 선거가 임박하고 응답률도 미욱한 여론조사 결과가 '위기'를 조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후보 단일화'를 위한 압박이 이어졌다. 왠지 안달이 났다. 그렇다고 '후단'에 대한 반박도 뚜렷하게 말하지 않았다. 프레임에 엮이지 않아야 한다, 싶어서였다. 그리고 30일,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가 사퇴하고 유시민 후보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조장된 '위기'에 덧대 안달했던 나는 드러내놓고 우울했다. 하지만 내 안달과 우울은 그저 자기만족과 자기 위안에 불과했음이 곧 까발려졌다. 각성은 한 선배의 말 한마디로부터 왔다. 부끄러워 잠시 고개를 떨궜다. 무언가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거나 혹은 긴장없이 겉으로만 대충 개입하면 '철저히 개입하면서 적절한 거리두기'로 다가갈 수 있는 총체적 자아를 망각하게 된다는 사실을 체득했음에도, 또 다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나 자신이 거기 있음을 봐야하는 또 다른 자아의 난감함과 자괴감은 컸다.

또 고백하건대, 안달의 경험은 예전에도 있었다. 2008년 촛불 때였다. 서대문에 있는 경찰청 기자실에 앉아 현장을 뛰는 후배 기자들의 보고를 받거나, 광화문에 나가 일렁이는 촛불을 현장에서 목도하고 기사를 쓸 때였다. 몹시 몸이 달았다. 거대한 개개인의 군집이 '자신들을 보호하는 데 소홀했던' 대의권력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꽉 짜인 제도 조직 안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 하나조차 터놓고 얘기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그건 촛불을 취재하는 나와 촛불을 바라보는 나, 그리고 일상 속의 나를 개별적으로 분리한 뒤 촛불을 든 타자들에 대한 거리두기로 습득한 인식을 조합하여 총체적인 주체로서의 나를 발현하지 못한, 그저 단편적 쾌락의 발현에 달뜬 나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해 6월11일자 1면 머리기사에다 '21년 만에 다시 광장이 열렸다. 시민들이 다시 광화문 일대에서 '신 6.10항쟁'의 장을 열었다'는 문장을 거창하게 뽑아낸 뒤 흐뭇해했다. 그 흐뭇함은 속했던 조직에서 평소에는 쉽지 않았던 그 문장을 쓸 수 있었음으로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마스터베이션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을 거의 지새우고 맥주 한 캔을 마시며 경찰청 기자실로 걸어가다 '과연 그랬나. 87년과 2008년을 그렇게 단순하게 견줄 만큼 둘은 비슷했던가'라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난 뒤 '촛불은 80년대 운동권의 관점으론 재현할 수 없는 새로운 정치 주체의 출현'이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기 시작했고, '긴장없이 겉으로만 대충 개입하며' 달떴던 나는 내내 자책했다. 이 글을 이딴 '일기'식으로 풀어가는 건 나부터 '후단론'의 위기 조장 압박에 안달했던, 그리고 촛불의 거대함에 압도되면서 겉핥기로 안달했던, 그다지 총체적인 개인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은 채 글에서만 쿨한 척할 수 없어서다. 그래서 이제부터 대놓고 쿨한 척 해보려 한다.

각인하건대, 이번 선거는 지방선거다. 거대한 대의권력을 뽑아 각종 인사권을 몽땅 쥐어주는 대통령 선거도, 각 지역 선거구를 대표하는 의회권력을 뽑아 인사권을 거머쥔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라고 투표하는 국회의원 선거도 아니다. 하지만 선거에서 우리를 지배한 프레임은 '절대적인 힘'으로 설정된 천안함과 관련한 '북풍' 혹은 '안보'이고, 그 뒤를 4대강과 세종시가 힘겹게 추동하고 있는 형국이다. 조중동이 1면과 종합면을, '점령된' 방송이 뉴스 첫 꼭지부터 10번째 꼭지까지 천안함 관련 이슈를 쏟아낼 때 이에 대항하는 언론은 행여 그들의 주장으로 기울까 우려하며 프레임의 균형추를 맞추는 기사를 쏟아내는 데 급급했다. 그리고 대항 언론은 한나라당에 불리한 '여론'으로 흘러가고 있는 4대강과 세종시를 제시하면서 천안함에만 쏠린 프레임을 또 다른 '절대적인 힘'으로 전환하려 꿈틀댔다.

하지만 지방선거의 피선거권자들이 그 '절대적 프레임'을 대의할 권력을 지녔는가, 라는 의문은 여기서 실종되고 말았다. 간혹 미약하게 제기됐던 의문은 '선거의 승리와 패배 뒤에 따를, 프레임을 선점한 권력의 주도권에 따라 MB를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가 결정되지 않은가'라는 겁박에 더는 기를 펴지 못했다. 수세에 몰렸다고 평가받는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사람특별시'에서 '평화가 경제다'라는 구호를 바꿔들고 나온 건 그 구도의 결정체였고, 근접하게 싸우고 있다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의 지지자들과 민주노총 경기도지부의 단일화 압박은 그 구도의 현시화였다. 여기서 시도 지사와 시도 의원, 교육감과 교육의원의 실질적 권력 행사에 가장 접근성이 뛰어난 '무상급식'이나 '일자리', '주거' 등의 이슈는 어느덧 사라졌고, 그런 생활 정치에 하나하나 기대를 걸고 투표하고 싶어 한 투표권자는 투표용지 어디에 기표를 해야할지 난감하게 됐다. 여기서 이택광 교수가 랑시에르의 개념을 빌려 설명한 '자기 발언권이 없는 몫없는 자들', 즉 '존재하지만 인식되지 않는 존재들'은 안달하는 자들에게 가려 또 다시 유령이나 투명인간이 되고 말았다.

또 각인하건대, 이건 데자뷔다. 돌이켜보면 촛불은 사실 좁은 신문 지면에서 즉자적으로 규정하기 힘든 대상이었다. 촛불을 하나로 묶어낼 명제는 광화문에 존재하지 않았다. 2008년 5~6월의 광화문은 그냥 난장이었다. '줄 세우기 공부시켜서 힘들어 죽겠는데 미친 소고기까지 급식으로 먹으라니'라는 10대도 저런 생각만으로 뭉뚱그려 규정되지 않았다. '화장품에도 쓰인다는데 도대체 뽑아준 대통령은 미국 가서 뭐한 거야'라는 '소울 드레서'와 '화장발', '쌍코' 카페 회원 여성들, '내 아이 이유식에도 미친 소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발끈한 유모차 부대도 오롯이 집단적으로 묶이지 않았다. 광화문에서 온전히 설명할 수 있었던 건 "야, 뽑아준 대통령. 내가 너 때문에 안전하게 먹고 사는 걱정 없도록 제대로 해"라는 목소리뿐이었다. 그래서 촛불은 87년 '서울역 회군'처럼 지도부의 판단에 의해 통제되지 않았고, 합법적인 대의 민주주의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 명박산성을 세워둔 채 더 이상 '소통'을 거부했을 때 그 명박산성을 깨부수고 청와대로 달려드는 불법성의 경계 근처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해산했다.

하지만 사실 조중동에게 촛불은 충격 그 자체였다. 조선일보가 가장 이해하지 못한 건 질서정연해야 할 대중이 거리로 튀어나와 해석되지 않는 난장스런 행동으로 국가에 반동하는 모습을 보이는 현실, 즉 의도대로 통제되지 않는 '국민'이었다. 세종로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거나 바닥에 앉아 삼삼오오 춤추고 노래하고 놀다가 경찰이 통제할라치면 어느덧 모여들어 "하지마, 하지마"를 외치는 군중이라니. 그래서 처음 '참을 수 없는 순정'이라고 찬사하며 촛불의 위세에 주춤 눌렸던 조선일보는 곧 '촛불 배후론', '광우병 괴담론', '좌파 준동론'으로 프레임을 선점하며 해석되지 않는 대상을 그들만의 어안렌즈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번 지방선거 구도에서 '인간어뢰'까지 동원해도 '북풍'이 불지 않자 2년 전 촛불을 끄집어내 "촛불, 너희 준동되거나 아무 생각 없이 나온 거 맞지?"라고 검증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이야 늘 그랬다 쳐도 정작 문제는 조중동이 선점한 프레임에 고스란히 대항하는 반조중동 여론에 있었다. 조중동이 선점한 프레임에 MB가 춤추자 대항언론은 "촛불엔 배후가 없었다", "촛불은 자발적이었다", "촛불은 MB탄핵이다"로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에선 더 나아가 촛불을 "다중의 민주주의"로 찬양하는 동시에 "촛불봉기를 선도할 새로운 주체들의 재구성이 시급하다"며 다중의 주체적 각성까지 요구했다. 여기서 MB에게 정권을 넘겨준 민주당은 이 프레임에 무임승차한 채 한나라당이 선점한 대결 구도를 숙주 삼아 '반MB', '반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하고 촛불의 성급한 정당정치화를 꾀했다. 그러나 촛불 이후 이어진 서울 교육감 선거와 재보선에서 촛불이 과연 '각성'했던가. 한나라당이 선점하는 프레임에 편승해 '반한나라당' 정서에 기대 기생하는 민주개혁진영과 그들의 '대세론' 혹은 '현실론'에 역시 편승한 대항언론은 그래서 새로운 판에 대한 상상을 하지 못한 채 이 땅을 내내 공전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래놓고 "투표하라"고 외치면서 '투표율이 높으면 유리할 것'이란 정치공학적 계산기나 두드릴 때, 정치는 그들만의 권력난투로 변질되고, 대중은 권력난투를 공허한 눈으로 바라보며 꾸역꾸역 그들만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꾸려가거나 그마저 포기한 채 투명인간이 된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2008년 촛불을 든 그들의 '참을 수 없는 순정'이 보다 현실정치적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진보신당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는 선거사무소 개소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새벽 4시 10분에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에서 6시부터 청소하는 아주머니들, 연세대학교에서 330여명에 가까운 청소하는 아주머니들, 밤 12시가 넘은 창동기지창에서 한쪽에서는 지하철을 청소하고 한쪽에서는 바퀴를 닦고 한쪽에서는 정비하는 분들. 저 같은 사람의 눈에도 이제까지 그분들은 보이지 않았다. 생각하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존재였지만 우리가 늘 눈으로 확인했던 존재는 아니었다. 그 분들은 그 노동하는 과정에서만큼은 투명인간이었다. 생각하면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투명인간들이 이 서울시에 얼마나 많은가. 저는 이 투명인간들을 서울의 진짜 주인으로 복원시켜내야 한다고 본다." 프레임을 깬 상상력의 권력화는 권력이 현실화할 때 새로운 상상으로 도피하는 과정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권력난투를 펼치는 그들만의 회전문에서 공전하는 이들의 지분거림에 더는 안달하며 안주하지 않아야 하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미디어스에 실렸습니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25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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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0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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