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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37

뚜껑을 열고 실제 받아 안은 민심은 예상과 달랐다.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2008년 5~6월 이명박 대통령에게 경고장을 보냈던 촛불 민심은 꺼지지 않은 채 잠재하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촛불은 대의제를 통해 맡긴 권력에게 민심과 괴리되지 않은 정책을 통해 '정상국가'를 운영해가라는 목소리이자 권리 주장이었다. 촛불 시위대는 이 정부가 명박산성을 쌓고 더 이상 목소리를 들으려하지 않자 촛불을 끄고 일상으로 돌아간 뒤 2년을 꾸준히 기다렸고, 역시나 '정상적인' 대의 민주주의의 방법론으로 일방통행 국정운영에 제동을 걸었다.


이런 점에서 50%에 육박했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마저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 여론조사의 허상이 아닐까 싶다. 촛불 이후 이번 정부가 각종 사법 권력을 동원해 가로막은 표현의 자유는 대중에게 정치적 주체성을 쉽게 표출할 수 없게 만드는 '자기 검열 체제'를 가동하게 했다. 응답률이 낮은 여론조사는 조사 기관의 의도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됐다. 결국 대중은 투표라는 대의 민주주의의 수단으로 정권과 여론 호도 세력을 심판해야겠다는 의식을 가지게 됐고, 그 과정에서 한나라당이란 거대 여당에 대응할 수 있는 조직력을 갖춘 민주당을 '도구'로 활용했다. 이번 선거의 승리 요인이 민주당이 표심을 이끌어서가 아닌 까닭이다.


사실 민주당은 선거 전까지 지지부진을 거듭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모든 이슈를 덮고 천안함 선거 정국을 이끌어갈 때 '한나라당의 안보무능'이란 프레임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선거에 북풍을 활용한다'고만 바득댔다. 한나라당의 대결적 대북정책이 부른 충돌과 달리 평화적 남북관계만이 충돌을 방지할 수 있다는 안보무능의 대안체제는 미래적 국정운영의 열쇠를 대중에 제시할 수 있지만, 선거에서 거의 작동하지도 않은 북풍에 대한 우려는 '안티 MB' 구도에 묻어가는 또 다른 선거 책략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뚜렷한 당의 비전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고, 서민을 끌 수 있는 정치적 계급성을 확보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안티 MB'로서의 존재감으로 연명하는 민주당을 보면서 악어와 공생하는 악어새나 숙주가 거대할수록 함께 비대해지는 기생생물이 연상됐다.


풀뿌리 지방자치에서 바닥 민심을 끌 수 있는 뚜렷한 정책 공약도 부각시키지 못했다. 그나마 제시한 친환경 무상급식 공약은 사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하나의 당이었던 시절 꾸려놓은 정책이 김상곤 경기 교육감을 통해 현시화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얻자 슬쩍 차용해온 것에 불과했다. 대중은 범민주당 정권 10년 동안 어떤 것이 행복했던 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별다른 행복의 기억이 없어서도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를 고민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이어서도 그렇다. 이번 선거 결과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마지막 기회인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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