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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38

 

2003년 개봉한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가부장적 가족문화와 유교 사회의 엄숙한 도덕주의로 포장됐던 조선시대에 대한 한국 사회의 공공연한 편견에 균열을 일으켰다. 정숙했을 것이라고 믿어온 사대부 집안의 조씨 부인(이미숙)과 그의 사촌인 조원(배용준)이 9년째 수절중인 숙부인 정씨(전도연)를 꼬드길 수 있는지를 두고 내기를 걸다니. 영화는 조씨 부인과 정씨가 첫사랑 관계라는 점에서 근친상간 금지라는 둘의 관계 내부적 금기와 숙부인이 지켜야할 수절의 가치라는 외부적 금기를 함께 깨부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을 그려냈다.


하지만 놀라웠던 건 이런 텍스트를 별다른 거부감없이 받아들인 한국 사회였다. 70~80년대에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성균관 유림회가 들고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영화가 엄숙한 도덕주의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대중이 이미 일으킨 균열을 영화가 소극적으로나마 읽어낸 것이란 말이 더 적확하다. 군사정권 국가나 그에 대항했던 운동권도 공고한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경계선에서 이탈하는 이들을 '도덕적 타락'이라며 질타했던 게 80년대 이전의 한국 사회 풍경 아니던가. 하지만 90년대를 거치며 한국 사회의 대중은 노는 것이 잘 사는 것과 밀접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들어선 놀 때 느끼는 쾌락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준다는 점까지 알게 됐다. 거기엔 2002년 월드컵의 걷잡을 수 없었던 흥분이 촉매제로 작동했다.


미하일 바흐친은 이론의 엄숙주의에 냉소를 보낸 러시아의 문화이론가다. 미디어평론가 이영주에 따르면 바흐친에게 이론주의는 인간의 창의성을 하나의 이론 체계로 환원하거나 축소하는 무엇이다. 이론주의는 인간 삶의 복잡한 진실이나 주체성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고정된 체계에 종속시킨다. 하지만 바흐친은 우리 삶에서 최종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최종적으로 결말지을 수도 없다고 봤다. 삶은 과잉, 허술한 빈틈, 변칙으로 가득 찬 수수께끼와 같고 그래서 충격과 당혹스러움, 변화와 혁명의 가능성에 항상 열려 있다.

바흐친은 이론이 짜놓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유쾌한 전복을 통해 끝없이 재생산되는 변화 과정을
'카니발'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위계적이고 공식적인 기존의 체제를 뒤엎고 기존의 가치체계와 편견을 거부하는 통쾌함이 인간을 해방한다고 봤다. 안정화해 있는 사회적 구조는 카니발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개입으로 기존의 개념이 서로 뒤바뀌는 혁명적 결과를 낳게 된다고 봤다. 우리에겐 2002년 월드컵이 한 예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삶의 복잡한 진실이나 주체성을 여전히 낡은 이념의 틀 안에 쑤셔박아 이해하려고 하고 있진 않은가.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한나라당의 문제도 이 지점에 닿아 있다. 최근 한나라당은 초재선 의원들이 잇따라 당 쇄신토론회를 열었다. 한 초선의원은 "'붉은 한나라당'이 되는 걸 두려워 말아야 한다"고까지 얘기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논의가 정치권이 대중을 선도할 방향만을 다루면서 미래적 권력을 노리는 당내 헤게모니 다툼으로 번졌다는 점이다. 여기서 대중과 한나라당은 괴리된다.

2002년
월드컵 이후 2008년 촛불로 이어진 대중의 모습은 극한까지 치달았던 경험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시선을 체득한, 변화한 주체라고 할 수 있다. 해방된 공간에서 느끼는 쾌락과 그로 인한 사회의 균열조차 엄숙히 다스려온 한나라당 정부가 당장 주목해야할 건 '붉은 한나라당'식의 정치적 방향성이 아니다. 그것보다 때론 유쾌한 전복을 꿈꾸는, 변화한 대중을 읽는 눈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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