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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의 여운이 여전하다. 1998년 이후 4년마다 지방선거와 공존해온 월드컵이 11일 개막했지만, 10여 일 전 있었던 선거 관련 담론은 끊이지 않고 있다. 월드컵 열풍에 가린 지방선거 투표율이 선거 때마다 걱정거리였음에도 이번 선거는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로 그런 우려를 덮어 버렸다. 나는 문화비평가 이택광의 분석에 기대 이번 선거가 보인 징후에 2002년 월드컵 이후 변화해온 한국 사회 대중들의 주체성이 한 몫을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상상 속에서 간절히 바랐던 쾌락을 현실화해준 '대~한민국'이란 '정상국가'의 이미지는, 대중에게 자신들을 만족시켜주지 않거나 자신들의 즐거움을 앗아가거나 혹은 자신들을 지켜줄 수 없는 '비정상국가'에 대한 거부감을 자연스레 구축해왔다. 그런 면에서 이번 지방선거의 높은 투표율과 한나라당의 참패라는 결과는 '반MB'로 상징되는, 정치적으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도 경제적으론 개별적 토대마저 지켜주지 않는, 그래서 마음껏 쾌락을 분출할 수 있는 즐거움을 억압하면서도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통해 개별적 삶의 버팀목조차 되어주지 않는, 사회 전반에 걸쳐 2002년보다 후퇴해가는 비정상국가에 대한 반발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지방선거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사실상 초기 레임덕 징후를 보이고 있다. 당장 2012년 국회의원 선거를 코앞에 둔 한나라당 초선 의원 89명 중 50명이 위기감 탓인지 대통령의 인적쇄신을 주장하는 연대서명에 동참했다. 이 대통령은 "초선들이 정치를 잘못 배운 것 같다"며 반감을 드러냈지만, 그 뒤에 덧붙여진 "7.28 재보선 이후에 (쇄신)한다고 발표한 것도 자꾸 말이 나는 걸 피해보려는 뜻에서였다"란 청와대 '핵관'의 말은 이미 청와대의 의중대로 정치 전반이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 초선의원들의 쇄신토론회에서 "'붉은 한나라당'이 되는 걸 두려워 말아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그 발화의 까닭이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권력 존치를 위한 것이든 아니든, 한나라당 특유의 동물적 생존본능이 벌써부터 일종의 자정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되레 14일 아침 선거 이후 처음 라디오와 인터넷을 통해 대중 앞에 나타나 인적쇄신은 하겠지만 민심의 심판을 받은 4대강 사업은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밝힌 이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민주당에 있다. 곳곳에서 벌써부터 균열의 조짐이 드러난다. 수도권에서 당선된 386 출신의 광역단체장은 "한.미 FTA 체결을 주도한 나를 더 이상 좌파로 보지 말라"며 커밍아웃했다. 대중이 그가 자랑스레 말하는, 80년대 기준의 '낡은 좌파'인지 아닌지 여부를 선택 기준으로 두고 그에게 표를 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정말 모르는 걸까. 게다가 3선에 성공한 전남의 광역단체장은 당론과 달리 "4대강은 정치 투쟁"이라며 "다른 강은 모르지만 영산강은 살려야 한다"고 반기를 들었다. 이 발언은 지방의 토목이나 건축 토호들이 한나라당에만 빌붙어 몰려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번 선거가 끝난 뒤 한나라당 참패 원인 중 가장 높은 비율(30.4%)을 차지한 것이 '4대강 사업' 강행이었다는 사실을 이 단체장도 역시 모르는 걸까.


게다가 서울에서 떨어진 후보 측은 준비되지 않은 정책과 비민주적인 후보 추대 과정에도 불구하고 '비정상국가'의 운영주체를 견제하기 위해 0.6%라는 근소한 격차를 선사해준 민심은 외면한 채 그저 권력을 쟁취하지 못한 탓만 군소후보에게 돌리고 있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 그들이 열렬히 호소한 '반MB' 구호가 '비정상국가'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그들의 권력 획득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음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그런 낌새는 구체적인 공약은 없었지만 그나마 민생경제를 내세우며 '사람특별시'를 말하던 후보가 천안함 역풍이 불자 재빠르게 '평화가 경제다'는 구호로 갈아타며 선거 공학적인 작동을 현실화했을 때 이미 밑천이 드러났다. '평화가 경제다'는 구호로의 급격한 전환은 천안함으로 인한 북풍을 선거에 활용하려는 한나라당 정부의 노골적인 전략만큼이나 부박한 대응책이었다. 이 지점에서 선거 초반 정부에 각을 세우며 '정책 선거 실종'을 호소했던 민주당도 이 실종에 적당히 한 몫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선거가 끝난 뒤 '정책연대를 통해 좌클릭할 수 있다'는 민주당 일각의 주장도 얼마나 현실성이 떨어지는지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5+4' 연대회의를 통해 선거연대를 주도했던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선거 직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진보세력이 모여 미국식 민주당이라는 연합정당을 구성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그의 주장은 현재의 구도로는 "민주정치 세력이 2012년에 집권할 수 없다"는 명제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미국식 양당제가 보여주는 한계는 뚜렷하다. 양당제는 사회를 '너 아니면 나'라는 식으로 반분함으로 인해 소수자와 약자, 비주류의 참여와 배려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혁명'으로까지 일컬어졌던 의보 개혁이 공공 보험 설립은 좌절되고, 의료 체계의 본질은 손대지 못한 채 보조금으로 민간 의보 미가입자 숫자만 줄이는 수준에 그치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에서의 '식코'는 계속 속편을 찍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월드컵과 촛불 이후 날이 갈수록 분화하는 대중의 욕구와 개별적 주체성을 두 개의 정당으로 뭉뚱그려 소화하려는 정치 체제는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87년 이후 보수-중도 독과점식으로 공전해온 정당체제가 이번 선거에서 다시 한 번 한국의 대기업 문화만큼이나 폭력적인, 거대 조직 우선주의적 '하청관계'를 고스란히 선거연대에 반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서 앞으로 시민사회의 소구점은 획일적인 정당연합이 아니라 대의제 민주주의 아래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선거 제도 개선으로 방향을 잡아야하지 않을까. 대중은 가끔 개별적 인간의 주체성을 이념에만 끼워 맞춰 이해하려는 이념주의자나 사회가 변화한 뒤에야 변화의 낌새를 포착해내는 전문가의 감각보다 빠르게 각성하고 진화한다. 대중이 '비정상국가'를 규정하는 기준점이 이번 선거에서처럼 '반민주'만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시민사회가 주목해야하는 건 그런 까닭에서다.

 

*미디어스에 실렸음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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