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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40

 

그들은 4년마다 한 번씩 나타난다. 몸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붉은 옷을 입고 광장에 나와 "대~한민국"을 외친다. 언론은 그들 앞에 모여 연방 사진을 찍는다. 이상한 건 늘 사진 속 그들 주변엔 얼굴에 희한한 페인트 칠을 해 공격적 마초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 남성들이 배치된다는 점이다. 거친 남성들의 대척점에 서야 '가냘퍼야만 하는' 그들의 여성성이 한껏 부각되기 때문일까. 그렇게 그들은 '똥습녀', '상암동녀', '아르헨 구둣발녀' 등의 호명을 통해 자신이 드러낸 과잉의 표현 수준만큼이나 비슷한 대중의 관심을 얻는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묘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많은 이들이 '월드컵녀'가 뜨면, 그들이 과연 어떤 연예기획사에 소속돼 있는지부터 추적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들의 소속 기획사가 확인되면 "그럴 줄 알았다"며 냉소하고 그들을 시선에서 배제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처음 월드컵녀로 등장했다가 곧 가수로 데뷔했던 미나 이후 수많은 아류가 뒤를 이었지만 그들이 미나 이상의 대중적 지위를 얻지 못한 건 그런 까닭에서다. '신비화 전략'이 주를 이루고 있는 스타급 연예인들과 달리 '노출 과잉'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호소하는 무명의 연예지망생인 그들은 '소비되길 기다리는 연예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한 채 남성의 은밀한 시선받이로서만 오롯이 복무하고 곧 버려진다.


나이지리아와의 경기 때 김남일의 실책에 아쉬운 표정을 짓는 모습이 TV 화면을 탄 뒤 "과한 노출 없고 성형하지 않은 '순수' 미녀", "진짜 축구를 아는 여성"이라는 환호를 받고 있는 '페널티녀'는 월드컵녀를 바라보는 남성적 시선의 또 다른 진화형이다. 이 시선에는 '청순 글래머'로 대변되는, 몸은 빵빵하고 얼굴은 예쁘되 남자를 압도하지 못하는 수동성을 가져야한다는 한국 남성의 전형적인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가장 남성적인 스포츠인 축구까지 즐길 줄 아는 여성이라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 존재인가.


신드롬은 대중의 욕망에 의해 탄생한다. 월드컵녀가 등장하는 건 그들에게 환호하는 대중, 특히 남성의 욕망에 그 시발점이 있다. 노출 여성을 앞세워 돈을 벌어보겠다는 연예기획사의 의도를 비난하기 전에 그들을 바라보는 일방적 시선부터 먼저 거둬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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