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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41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밝았다. 그는 지난달 24일부터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8일째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그를 퇴학시킨 대학의 동료 학생들이 개교 91주년을 기념한다며 나선 국토대장정에 발맞췄지만, 속도가 느려 그들이 130km쯤 나갈 때 겨우 35km쯤 왔다고 했다. 첫날은 손바닥으로 아스팔트를 밀쳐내며 땅을 박차고 나아갔지만, 몸이 뻣뻣이 굳은 이튿날은 연거푸 앞으로 고꾸라졌다. 땅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이라고 했다.


물집이 생겼다 터진 무릎엔 고름이 고였다. 종아리와 허벅지는 햇볕에 빨갛게 익어 화상에 따른 습진이 생겼고, 땅을 짚는 손목과 어깨는 밤이 되면 빠개질 듯 아파 잠을 설치게 했다. 나흘째인 27일 길가에서 대장정 대열과 마주쳤지만, 행렬은 그의 반가운 얼굴을 뒤로 하고 각종 협찬사 이름이 적힌 깃발을 펄럭이며 빠르게 그의 옆을 지나쳤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두산의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은 지난해 말 "백화점식 학과를 과감히 정리하고 시대 변화에 맞게 재편해 대학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18개 단과대학의 77개학과(부)를 10개 단과대학 40개 학과(부)로 개편하는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인문학을 다루는 학과의 상당수가 학부로 통합됐다. 노영수(28.독문과)씨는 4월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한 대학과 인문학이 설 자리를 잃게 되는 현실에 반발해 교내 신축공사 현장의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시위를 벌였다. 중앙대는 곧바로 징계위를 열고 그를 퇴학시켰다. 그리고 얼마 뒤 '고공 시위로 신축공사가 중단돼 피해를 입었다'며 2469만원가량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다.

대학의 기업화는 사실 중앙대뿐만 아니다. 동국대와 건국대, 성균관대와 숙명여대도 '기업식' 학과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최소의 비용으로 극대의 효율'을 꿈꾸며 그 곳에 인간이 설 자리는 고려하지 않는 신자유주의는 대학까지 들이닥쳐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중심으로 교육과정과 모집인원을 조정하고 있다. 결국 기업에서 쓰일 '부품'을 찍어내는 하청공장이 된 대학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공부하고 기존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회의를 가르치는 인문학을 끊어내면서 그 '부품'이 사유없는 기계적 존재로만 기능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엊그제 땡볕을 종일 내리 쬐어서 차가운 물에 몸을 담갔는데도 몸이 최악이네요.” 그는 그러면서도 피식 웃었다. 한숨 끝에 노씨와의 전화를 끊고 거리를 걷다 바라본 한 대형서점 외벽엔 '너와 난 각자의 화분에 살지만 햇빛은 함께 맞는다는 것!'이란 문구가 걸려 있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놀라며 다시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다만 오늘 하루라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있는 그에게 햇빛보단 비가 흩뿌렸으면 해서다.


추신.

그는 넉넉치 못한 자금 사정상 밥 한끼도 아껴 먹는다고 했다. 무릎보호대도 다 떨어졌다고 해 걱정했지만, 지역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왠지 가슴이 먹먹해져 그의 계좌로 후원금 5만원을 보냈다. 밥 한끼라도 넉넉히 먹을 수 있었으면 해서다.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2-809-570-151 노영수

 

추신2.

여러모로 노영수씨는 "대학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김예슬씨와 견주어 진다. 김씨가 대학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투쟁하겠다고 나선 반면, 노씨는 대학에서 축출당했지만 현실 안에서의 현재적 대학을 바꾸어보겠다고 바득대며 투쟁하고 있다. 나는 누가 더 낫다는 비교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의 목소리 둘 모두가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일으키고 널리 공론화하길, 그래서 공고화한 자본의 틀에 작지만 큰 균열이 생기길 바란다.

추신3.
다행히 하늘이 오늘 그의 등에 비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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