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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42

방송인 김미화(46)씨가 'KBS 블랙리스트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김씨는 트위터를 통해 '출연금지 인물 리스트'의 존재 여부에 대해 물었지만, KBS는 물음에 답하지 않고 물음 자체가 명예훼손이라며 그를 고소했다. 국내 최대 방송사가 뭐가 그리 자신이 없어 하루도 지체없이 법의 힘에 기대겠다며 엄살을 떨었을까. 평소 대중의 신뢰를 자신하는 조직이라면 법에 호소할 이유가 있었을까.


한나라당은 한 술 더 떴다. "김씨는 흔히 말하는 공인이다. 재보선을 코앞에 두고 정치적 파장을 일으킬 것이 뻔한 발언을 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 차라리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라"고 했다.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김씨의 발언이 한나라당에 의해 정치적으로 포장된 셈이다. 결국 이들의 시선을 통해 김씨는 원했건 원치 않았건 또다시 '진보적' 인사가 됐다.


과문해선지 나는 단 한 번도 김씨가 '진보적'인 발언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개인적인 아픔을 곱씹게 해 미안하지만, 김씨는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과의 이혼 소송을 겪으며 개그맨이란 이름 위에 '매맞은 여성'이란 이미지를 떠안게 됐다. 그리고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진보적 여성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서 나는 영화 '밀양'을 떠올리며 문득 불편해졌다. 아들이 유괴살해된 아픔을 안은 신애(전도연)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치유해주겠다"고 나선 기독교인들이 생각나서다. 그리고 어느덧 신애는 자신도 모르게 '용서의 미학'을 실천할 종교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씨나 신애나 진보나 종교의 상징이 되고자 그들 스스로 발걸음을 내민 적이 있던가.


하지만 더 불편한 건 이 지점을 겨냥한 보수의 화살이다. 그들은 '흔히 말하는 공인'이 정치적 진보의 상징이 되어 '우매한 군중을 선동'하는 게 마냥 두렵다. 그래서 그들은 '공인'이라는, 개념도 명확지 않은 공간에 김씨를 몰아놓고 있지도 않은 정치성을 거세하고 말겠다며 바득댄다. 6.2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그 까닭을 '몇몇 영향력있는 파워트위터들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선동형 조직'인 트위터 때문이라고 인식한 보수의 논리도 여기에 덧대 있다.


직업과 명성, 재산과 학력에 따라 개인을 공인 혹은 사인으로 구분하는 사회는 그런 구별짓기 자체로 모든 개인이 동등한 지위에 서는 민주적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롯이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공인의 위치에서 중립을 지키라'는 발화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현재의 한국 사회 개인들이 그런 140자 말에 '선동'될 만큼 우매할까. 게다가 말 그대로 김씨가 '공인'이라면 그가 개별적 관계에서 매를 맞았다는 사실은 그럼 어떻게 했어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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