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영화는 다분히 계보학적이었다. 주로 수컷 (지식인)들의 동물적 욕망과 비루한 습속, 위선을 낳은 지배적 가치 체계와 권력 관계를 적나라하게 파고 들어갔다. 남녀 간의 관계, 지식인의 속물 근성 등 권력 관계의 계보학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갔다. 서사와 메시지는 대체로 분명했고, 때로는 너무 솔직하기 때문에 불편하기도 했다. 그 불편함은 대체로 기존의 가치 체계 내부의 관념이나 준거로 메시지를 판단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홍상수의 영화는 계보학을 버리고 해체주의 쪽으로 노선을 전환한 것 같다. 에서 세 남자의 시선에 따라 교차하는 ‘선희’와의 관계를 섞어 ‘진짜 선희’ 혹은 ‘순수한 선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슬쩍 보여주더니, 16번째 영화 에..
영화와 책, 두근거림
2014. 9. 9.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