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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이 노력과 실력에 따라 쟁취할 수 있는 욕망의 대상으로 오해될 때, 기득권을 가진 자와 미래의 기득권을 욕망하는 자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힘을 합친다. 학벌과 같은 문화자본이 한국 사회의 일부 계급을 중심으로 세습되고 그 세습이 고착화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도, 이 지적에 대한 반발에 이미 기득권을 가진 자가 아니라 미래의 기득권을 욕망하고 있는 자들이 핵심 주체로 나서는 현상은,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가 얼마나 교육의 본질 그 이상의 가치로 포장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점은, 이미 기득권을 가진 자가 아니라 미래의 기득권을 욕망하는 자가 언젠가 그 욕망에서 철저히 배제된 뒤 겪게 될 박탈감이 사회로 어떻게 표출될까 하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과학도’ 윤준현씨가 ‘마지막 글’이라고 선언한 재반론 글에 대해 다시 하나씩 톺아보고자 한 까닭은, 윤씨와 같이 이미 기득권을 가진 자가 아니라 미래의 기득권을 욕망하는 자가 가진 꿈이 얼마나 허상에 불과한지 살펴보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먼저 윤씨는 첫 글에서 ‘민주통합당의 아마추어리즘’을 지적했던 까닭에 대해 재반론 글에서 “민주통합당의 의도가 그렇게 깨끗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정책 담당자의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첫 글에서 이미 “이미 새누리당에서 지적하였듯이 이는 ‘서울대 출신’과 ‘비서울대 출신’의 대결 구도를 조성하여 ‘비서울대 출신’들의 표를 얻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의심을 제기한 바 있다. 조선일보 역시 윤씨와 같은 의견을 담았다. “민주당의 국립대 통합 발상은 지방 국립대와 학부모들의 지지를 끌어내 6개월도 안 남은 대선에서 재미 좀 보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게 선거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당이 서울대 다음에 없애려는 대상은 또 무엇인가. 나라는 3류로 만들어도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심산인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 [각주:1]

 

윤씨가 민주당의 의도에 대해 ‘포퓰리즘’ 담론에 기반한 이런 의심을 제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라는 정책을 정당 정치 안에서만 논의되는 담론으로 축소한 뒤 정당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 편승하면서 정책을 폄하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물론 민주당의 정책 의지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7월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감한 교육 정책인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 정책을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하지 않은 채 간 보듯 툭 내던졌다. 그 뒤 대다수 언론에 의해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가 ‘서울대 폐지론’으로 매도당한 뒤 “당론이 아니며 결정된 것이 없다”고 즉각 한발 물러섰다. 윤씨의 비판이 민주당 정책 의지의 불투명성으로만 한정됐다면 일단 수긍이 가능한 까닭이다. 그러나 윤씨의 비판은 “‘비서울대 출신’들의 표를 얻겠다는 의도”를 의심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윤씨의 재반론 마지막 문단에서 ‘국공립대통합은 배제된 80%의 목소리다’라는 내 글의 제목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이 주장에 대한 재반론은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이를 ‘진보 진영의 문제’라고 무리하게 일반화하면서 내세운 여론조사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는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공립대 통폐합 안을 찬성하는 비율은 15%인 반면 반대하는 비율은 55%이라고 한다. 이렇게 형편없는 지지를 받는 정책이 ‘배제된 80%의 함성’이라 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 리얼미터의 조사가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를 ‘서울대 폐지 찬성 여부’로 질문한 것과는 별도로, 그러니까 윤씨의 주장이 앞뒤 맥락이 뚜렷하다면, 민주당이 ‘15%’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선을 앞두고 저 정책을 내세웠다는 말이 되겠다. 주장을 위한 주장을 내세우다 보면, 앞과 뒤에서 내세운 근거가 저렇게 모순을 가져올 수 있다.

 

서울대는 연세대․고려대와 다르지 않다

 

윤씨는 또 “이재훈 기자도 먼저 국공립대 통폐합이 현실화될 경우 우선은 연고대가 대학 서열의 최상위층을 차지할 것이라고 인정하는 듯하다. 아마 연고대가 대학 서열의 최상위층을 차지하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보다는 차라리 서울대학교 학부가 존재하는 상황이 더 낫다는 점도 생각이 같으리라 본다”고 했다. 이 주장은 전형적인 오독이다. 나는 윤씨와 생각이 같지 않다. 나는 분명히 이전 글에서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의 특수목적고 출신 학생 비율이 20%대로 비슷하고, 서울대의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출신 신입생 비율이 전체 합격생의 9%에 이르러 합격생 10명 가운데 3명 이상(31.6%)[각주:2]이 ‘특목고 혹은 강남 3구 출신’임을 지적했다. 그리고 “현재의 서울대는 사회과학도가 생각하는 만큼 ‘교육 기회균등 노력’에 결과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서열 1위가 서울대가 됐든 연세대가 됐든 고려대가 됐든 한국 사회의 교육 양극화와 불평등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씨는 끝까지 이런 주장에 대해 통계적 반박을 하지 못한 채 “(서울대가 폐지되는) 국공립대 통폐합안은 대학 서열은 철폐하지 못하고 가난한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할 기회만 막는 개악이 된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얘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다시 한 번 설명하자면,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는 서울대 학부생 선발을 폐지하는 것이지 서울대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다. 서울대 대학원은 통합네트워크에 남아 있게 된다. 만약 서울대 학부생 선발 폐지가 서울대의 ‘명문대’ 지위를 잃는 것이란 윤씨의 주장이 옳다면, 역설적으로 서울대는 정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대가 학생들을 ‘명문’이 되도록 가르치고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명문’급인 학생들만 선발한 선발 효과로 ‘명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설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입학 성적만으로 결정되는 대학 간판이라는 신호가 여전히 중요하다면, 대학 교육의 효과는 대체 어디에 방점을 두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앞에서 제시한 바대로 서울대는 현재 연세대나 고려대만큼이나 특권층 중심의 대학이라는 실증적인 통계가 있다. 그러므로 ‘가난한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할 기회’는 이미 사라지고 있고, 서울대는 그 통로가 되지 못한다. 그런 연구 결과는 지난번 글에서 얘기했던 ‘실증적’ 통계 외에 최근 또 하나 추가됐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의 김영철 연구위원이 2004년 전국 중학교 3학년생 1731명의 2008학년도 대학 진학 결과를 추적 조사한 결과를 담아 지난해 말 발표한 ‘고등교육 진학단계에서의 기회형평성 제고 방안’ 보고서를 보면,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녀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두 배 이상 차이가 났고, 특히 서울대 등 상위권대 진학률은 17배가량 벌어졌다. 서울대와 카이스트, 포스텍과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 9개 대학의 소득 하위 1분위 자녀 진학률은 0.8%에 불과한데 견줘, 소득 상위 10분위 자녀는 13.8%나 된 것이다. [각주:3]


출처 : 세계일보


 

기회균형선발 비율 연세대>서울대>고려대 순

 

게다가 윤씨는 “아직 서울대가 이러한 계층 이동의 길을 충분하게 열어주지 못한다면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입학 전형을 크게 확대하면 된다. 서울대는 국립대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하다. 동시에 국립대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김영철 연구위원의 같은 보고서를 보면,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 서울 소재 7개 대학의 기회균형선발제 입학 현황을 볼 수 있다. 서울대는 2011년 총 입학생 3391명의 5.3%에 해당하는 181명의 정원 외 학생을 저소득층 가정과 농어촌 지역 가정 학생, 전문계고 졸업자 전형 등 기회균형선발제로 선발했고, 연세대는 총 입학생 3914명의 7.8%에 해당하는 305명, 고려대는 총 입학생 4190명의 4.9%에 해당하는 204명을 선발했다. 서울대는 연세대보다 적고, 고려대보다 다소 높은 수준에 불과하다. 이 비율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크게 차이가 없었다. 결국 ‘국립’이면 저소득층에게 기회를 더 열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과거 통계를 봤을 때, 허상에 불과한 주장이다. 게다가 기존의 기득권 중심 체제를 유지한 채 일부 비율만 ‘어퍼머티브 액션’으로 길을 열어주는 제도는, 일부의 ‘시혜적 혜택’을 밑돌 삼아 기득권 중심 체제의 억압 구조를 좀 더 공고히 하기 위한 눈가림에 불과하다.



 

윤씨는 또 “일찍이 바르다흐(Bardach)가 지적하였듯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거나 최소한 수용 불가능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실현가능성의 평가 기준에는 영향력 있는 집단들이 반드시 포함된다”면서 “이미 연고대를 포함한 주요 사립대들이 대학 서열의 최정점을 차지한 상황에서 만일 연구비를 국공립대에 집중한다면 사립대들이 가만히 있을까. 참여 정부 시절 사학법 개정이 실패한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 사립대학들은 서울대학교 출신들 이상으로 강력한 이익집단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거부점(veto point)이 많아 정책 집행에서 실패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요약하자면, 사립대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엘리트 이익집단의 존재 때문에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가 정책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작다는 얘기다. 윤씨는 또 재반론의 뒷부분에서 이런 주장도 한다. 그는 “한국의 기업이 아무 이유없이 학벌 차별을 하는 비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라며 생산성이 같지만 ‘좋은 대학’을 졸업한 노동자 A유형과 ‘나쁜 대학’을 졸업한 B유형을 전제로 두고, 한 기업이 학력 차별을 해서 A유형만 고용하고 B유형은 고용하지 않는다면, 다른 기업이 B유형을 싼 값에 고용해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갖게 된다고 주장했다. 기본적으로 이 주장은 ‘모든 기업은 규제없이 그냥 둬도 자유롭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시장 자유주의’ 경제학 신봉자들의 견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과연 한국 사회는 그런 ‘합리적’ 기업들로 가득하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가. 여전히 “올해 공채에 드디어 서울대 출신이 절반을 넘겼다”, “우리 회사에 요즘 점점 서울대 출신이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야”라는 식의 자랑 혹은 푸념이 기업 간부들에게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한국 사회의 채용 문화는, 그럼 어디에서 ‘합리성’을 찾아볼 수 있고, 경제 독식주의의 만연에 따라 새누리당마저 참여해 논쟁중인 ‘경제 민주화’는 왜 등장한 것일까.

 

학력․학벌 차별이 과연 자유시장의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결과일까

 

당장 23일 감사원이 내놓은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감사보고서’만 봐도 이런 현상은 쉽게 발견된다. 이 보고서를 보면, 신한은행은 개인의 신용을 평가할 때 직업이나 급여 외에 학력도 신용평가 요소의 하나로 삼아 대출자들을 학력 차별했다. 고졸 이하 대출자에겐 13점, 전문대를 나온 사람은 38점, 대학 졸업자에겐 43점, 석․박사에겐 54점의 신용평가 점수를 줬다. 학력이 낮아 대출이 거절되거나, 학력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돈을 쓰면서도 더 많은 이자를 물어야 하는 공공연한 차별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각주:4]  만약 사람들의 과거 대출 내역을 분석해보고 학력에 따라 부채 상환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는 ‘실증적’ 사실에 근거해 차등을 매겼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겠지만, 그런 통계적이고 실증적 근거가 있는 차등 부과였다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은행의 학력 차별이 단순 편견에 의한 것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윤씨의 주장대로 신한은행이 직업과 급여에서 차이가 없는 사람인데 단지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부하거나 대출 이자를 더 추징한 것 역시 ‘경쟁 우위’를 위한 ‘합리적 선택’의 일환일까.

 

더욱이 윤씨가 앞에서 주장한 이익집단의 ‘의사 거부점(veto point)’ 논리와 뒤에서 주장한 ‘시장 자유주의’는 엄연히 상충하는 모순을 갖고 있다. 윤씨가 앞에서 말한 ‘영향력 있는 이익 집단’은 사실 학벌의 비탄력적 수요와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윤씨의 주장대로 사립대가 정치적 결사체로 이익 집단이 되어 정당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한국 사회의 엘리트 중심적인 ‘학벌’ 구조를 근간으로 삼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윤씨는 앞에선 강력한 학벌 중심 이익 집단의 존재 때문에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를 정책화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뒤에선 기업이 학력이나 학벌을 보지 않은 채 합리적 선택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엇갈린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선 윤씨와 같이 행정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도 윤씨의 주장에 무리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윤씨와 같은 대학의 같은 행정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있는 한 대학원생(트위터 아이디 : @a_mannerist)은 “윤씨 글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 분석에 쓰이는 전문용어들을 이제야 본격적인 논의의 첫 걸음을 떼려 하는 정책 대안을 깎아내리는 데 쓰고 있다는 점”이라며 “예를 들어, ‘의사 거부점(veto point)’은 주로 정책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정책을 수립할 때 예상되는 어려움을 미리 검토해서 대응책을 짜기 위해 주로 쓰인다. 만약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정책을 의사 거부점이 많다는 이유로만 뒤엎자는 것은, 민주주의 하지말자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교육과 대학진학 상관관계 없다’->‘대학 진학은 두뇌와 성실성에 따른 것’?

 

하지만 윤씨는 “우리나라의 기업은 이렇게 경쟁 기업이 근거 없는 학력 차별을 해서 만들어 주는 기회를 그대로 흘려보낼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며 “기업이 학력에 따라 대우를 달리하는 것은 학력에 따라 생산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학력에 따른 생산성의 차이는 “명문대 출신일수록 성실한 사람이 많아서”라고 주장했다. -내가 말하지도 않은, ‘이재훈 기자 생각대로라면 좋은 대학 출신들이 받았던 사교육이 회사 업무 수행에 도움이 돼서일까’라는 문장은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 그러면서 그는 학력에 따른 생산성의 차이가 사교육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두뇌’나 ‘성실성 훈육’ 등이 ‘명문대’에 갈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언론인인 이재훈 기자에게 논문 실증 연구 결과를 정확하게 해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필자에게 취재 제대로 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리라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만 써야 필자 같은 아마추어한테서 논문 읽을 줄도 모른다는 핀잔을 듣지 않을 수 있다”고 했던 윤씨는 정작 부모의 ‘두뇌’와 ‘성실성 훈육’이 ‘명문대’ 진학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아무런 실증적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되레 그는 이전 글에서도 얘기했던 최형재 고려대 교수의 논문 ‘사교육의 대학 진학에 대한 효과’를 과잉되게 해석하면서 ‘논문 읽을 줄 모른다’는 핀잔을 예고한다. [각주:5]  그는 앞선 세 글에서 한결같이 이 논문을 ‘사교육은 대학 진학에 효과가 없다’->’그러므로 대학 진학의 효과는 본인의 성실성(부모에게 훈육된)과 두뇌(부모에게 물려받은) 덕분이다’라는 결론을 내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논문의 결과가 과연 그럴까. 최 교수는 논문의 결론에서 “본 연구는 사교육이 (부(富) 또는 학력의) 대물림 과정에서 직접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며 “본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이나 교육수준 등 가족배경은 자녀의 대학진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가족 배경을 통제할 경우 사교육의 대학진학에 대한 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최 교수는 이어 “학업성취도는 기본적으로 개별 학생의 능력 또는 성취 동기와 그러한 능력과 성취 동기를 배양해주는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데, 부모의 소득이나 교육 수준이 이러한 환경을 대변해주는 대리변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학진학(또는 학업성적)에 있어 가정환경 변수들의 통계적 유의성이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결국 최 교수의 논문 결과는, (상위권) 대학 진학에 있어 사교육의 효과는 유의미한 상관 관계가 없고, 부모의 소득이나 교육 수준이 개별 학생의 능력 또는 성취 동기를 배양해주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유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부모의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에 따라 학력과 학벌이 고스란히 세습됨을 알 수 있는 결과다. 최 교수의 논문 어디에도, ‘개별 학생의 성실성과 부모에게 물려받은 두뇌’는 언급되지 않는다. 윤씨와 같은 행정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있는 한 대학원생(트위터 아이디 : @a_mannerist)은 “최 교수의 논문은 완성도가 아주 높고 사교육비와 대학 진학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결론을 매우 신중하게 도출하고 있다. 특히 학생 개개인의 학습능력과 사교육 참여도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면, 대학 진학의 차이가 사교육의 효과인지 개인 능력의 차이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최 교수는 학생의 성적을 학습능력에 대한 대리변수로 측정한 최상근(2003)의 연구를 인용해, 학생들의 학습능력과 사교육 참여도가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비슷한 비율로 사교육에 참여하면서도 그 효과가 나타난다 할 수 있는 최상위권 학생과, 그렇지 않은 최하위권 학생을 분리하여 분석하면, 학생 개개인의 학습능력과 사교육 참여도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최 교수 논문의 계량분석이 할 수 있는 딱 부러진 이야기는, 부모의 소득과 같은 사회통계학적 변수를 통제한 상황에서 사교육과 대학진학 사이에 일관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 교수는 논문에서 교육기회의 불평등과 부의 대물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도 제시했고, 다만 그것이 사교육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최 교수는 결론 부분에 양극화 현상에 대한 우려를 누누이 강조하면서, 이러한 연구의 결과로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하는 것보다 ‘교육적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양극화 해결방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두고 사교육의 효과가 없으니 개인의 자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심각한 오독”이라고 덧붙였다.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는 지역 균형발전의 실마리다

 

하지만 윤씨는 이런 오독 투성이에 실증적 근거도 없는 주장들을 종합하면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학자들도 칼럼 쓸 때 통계 그렇게 많이 제시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이론적 틀과 실증 근거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진보 진영의 더 큰 문제는 이런 설익은 주장을 해서 국민의 지지를 전혀 얻지 못하면서 이러한 주장을 ‘민중의 소리’라고 포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에서 인용한 김영철 연구위원의 논문을 보면, ‘거주지역에 따른 진학 성과의 차이’도 분석돼 있다. 서울과 광역시, 중소도시와 읍면지역으로 나눠 학생들의 ‘9대 주요 대학 및 의대 진학률’을 보면, 서울은 6%로 광역시(2.1%)의 2.9배, 중소도시(1.9%)의 3.2배, 읍면지역(1.7%)의 3.5배에 이를 정도로 격차를 벌이고 있다. ‘30위권 대학 진학률’ 역시 서울이 12.6%로 광역시(10.8%), 중소도시(7.8%), 읍면지역(7%)보다 훨씬 높다. 서울지역 학생들이 ‘서열 상위권’ 대학에 훨씬 많이 진학해 ‘수도권 중심주의’를 고착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4년제 대학 진학률’은 서울이 47.7%로, 광역시(59.9%), 중소도시(56.6%), 읍면지역(50.5%)보다 눈에 띄게 낮다. 김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서울지역 내의 학생 간 격차가 다른 지역 학생 간 격차에 견줘 매우 큰 편이라는 것을 방증한다”며 “서울지역 내의 진학 성과의 차이는 (강남 3구를 중심으로 한) 자치구별 서울대 입학률 차이를 통해서도 선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서울에서도 ‘강남 3구’를 중심으로 한 소득 상위 계급이 ‘수도권 중심주의’의 결실을 독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김 연구위원의 2003년 논문 ‘지역 인재의 수도권 대학 진학과 지역 경제력 유출 효과 :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를 보면, 교육을 중심으로 한 지역 붕괴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각주:6]  논문은 “대구지역 고등학교 졸업자의 수도권 대학 진학자 수와 비율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고, 이에 따라 지역 4년제 대학의 경우 성적 상위권 학생들의 분포가 줄어들어 전반적인 학력수준 저하를 가져오고 있다. 대구지역의 우수 인재가 수도권으로 유출됨에 따라 지역 경제력 유출효과를 측정한 결과, 소비효과와 생산효과를 합해 연간 2000억원을 상회하는 경제력이 인재유출에 수반하여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지역 인재 유출은 지역 내 인적자본의 감소를 가져와 연간 4000억원 규모의 마이너스 외부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 우수인재의 수도권 유출에 따른 이러한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방대학 육성이 필수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 출신의 서울 소재 대학 졸업생들이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귀향해 지역 소재 기업에 취업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대학 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 알리미’를 통해 전국 4년제 대학의 2011년 입학생 현황을 보면, 서울 소재 대학 41곳에는 모두 7만6522명, 지방 소재 대학 162곳에는 모두 27만279명이 입학했다. 지방 소재 대학생은 전체 입학생의 77.9%에 이른다. 게다가 전문대 졸업자와 대학에 진학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까지 합치면, 비율은 80%를 훌쩍 상회한다. [각주:7] 이들이 지역의 경제 기반 붕괴와 서울 유학생들의 취업 역귀향 현상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불안정 노동 현장으로 귀속된다.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지방 국공립대와 일부 사립대를 통합해 사실상 무상교육으로 소득과 상관없이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이들이 지방 공무원과 국립대병원 등의 일자리에 우선 채용될 수 있도록 할당하면서, 수도권 경제 집중 현상을 완화해 지역 경제를 일자리 중심으로 재편하자는 나의 전 글에서의 주장이 ‘배제된 80%의 목소리’라는 문구로 상징된 까닭이다. 이를 “80%의 지지를 얻지도 못하면서 ‘민중의 소리’라고 포장하려 한다”고 보는 시각은 문자가 표상하는 그대로의 의미에만 천착한 해독이라고 할 수 있다. 점점 국가의 경제 주체에서 소외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배타적인 지역 문화를 나타내고 있는 지방 소외 현상, 대학 서열 중심의 ‘수도권 중심주의’에 의해 지역 출신자들이 서울 유학생들에게 자리를 뺏기며 상대적 박탈감이 배가되는 현상, 그리고 대학에 갈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현상을 그럼 그냥 두고 보자는 말인가.

 

물론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라는 제도는 이런 모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마법의 열쇠가 아니다. 게다가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쉽게 제도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민주당의 정책 의지마저 불투명해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를 대선 공약으로 공식화한 야권 후보는 손학규 한 사람밖에 없다. 하지만 정당 정치의 정치 공학만으로 정책의 실현 여부를 예단하고, 이에 대한 기대조차 저버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의 정치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망각한 발상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서열 상위 10여개 대학이 독점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기득권은 학벌이 중심이 되어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하고, 이렇게 형성된 기득권 카르텔을 고스란히 세습해 계급을 고착화하면서 더 이상 배제된 80% 이상의 사람들에게 길을 터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래의 기득권에서 마침내 배제되고 말 사람들이 대의 정치의 영역에 기득권 해체의 단초를 열 수 있는 정책의 제도화를 요구하는 것이 가능성이 없는 미래의 기득권을 욕망하는 것보다 좀 더 합리적 선택 아닐까. “보편적 교육에 대한 목소리라기보다는 서열화한 대학을 소비할 수 있도록 보편적 복지를 통한 보편적 소비 요구로 작동한” [각주:8] ("'반값 등록금', 소비 아닌 노동의 눈으로" 참조) ‘반값 등록금’ 촛불이 정작 이 지점에서 꽃피워야 하는 건 그런 까닭에서다.


*한겨레 훅에 실렸음.



  1. 조선일보 7월2일자, 민주당, 서울대 폐지 다음엔 또 뭘 없애자 할 건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01/2012070100446.html [본문으로]
  2. 앞선 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배제된 80%의 목소리다’에서 밝혔다시피, 2011년 서울대에 합격한 서울 지역 일반계 고교생 686명 가운데 42.5%(292명)가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출신이었다. 전체 합격생 3255명 가운데 9%에 이르는 수치로, 결국 10명 가운데 3명 이상(31.6%)이 특목고 출신이거나 ‘강남 3구’ 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3. '고등교육 진학단계에서의 기회형평성 제고 방안', 김영철, 2011년 12월, 한국개발연구원 [본문으로]
  4. 경향신문 7월24일자, '대출도 ‘학력차별’… 신한은행, 고졸 13점·석박사 54점 신용 평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7232202035&code=920301 [본문으로]
  5. ‘사교육의 대학 진학에 대한 효과’, 2007년, 최형재 고려대 교수, http://222.110.238.9/pub/docu/kr/AI/WP/AIWP2007AAA/AIWP-2007-AAA.PDF [본문으로]
  6. 지역 인재의 수도권 대학 진학과 지역 경제력 유출 효과: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김영철 외, 2003년, 한국지역학회 [본문으로]
  7. 2011년 고교 졸업생 64만8468명 가운데 46만8187명이 대학에 진학해, 대학 진학률은 72.5%를 나타냈다. 대학 미진학자 18만 281명 가운데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재수생도 포함돼 있겠지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도 포함돼 있다 [본문으로]
  8. 이 주장에 대해서는 ‘반값 등록금, 소비 아닌 노동의 눈으로’, 이재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34호,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6 를 참조하면 좋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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