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과 정성근을 통해 한국 사회의 비판 영역에서 가장 자유롭던 언론인들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에 대한 비판 -그것이 비록 다분히 소비자 중심주의적 시각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역시 기존의 어떤 참사나 사고 때보다 수위가 높았다. 이 자리에서 언론인의 도덕적 반성 따위를 바랄 생각은 없다. 게다가 문제는 언론인의 도덕성 같은 것이 아니다. 문창극과 정성근같은 이의 출현은 언론 시스템의 모순에 대한 근원적 성찰 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그들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언론인 주변에 있는 일상적 인물이다. 그런 관점에서 무엇보다 언론인의 취재 윤리부터 근원적으로 되짚어야 한다. 기자가 취재하는 팩트란 무엇인지, 반대로 그 팩트를 수집하는 취재란..
‘현업언론인 시국선언문’이 신문에 실렸다. 세월호 참사 발생 38일째 되는 날이었다. 63개 언론사 5592명의 언론인이 이름을 올렸다. 유례없는 이 선언문은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인해 드러난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 우선 “‘전원 구조’라는 언론 역사상 최악의 대형 오보”라는 토로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전원 구조’ 보도가 오보였고, 이 오보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언론이 “취재를 통한 사실 확인보다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기에 급급”해서 오보가 났다고 보는 시각이다. 재난이 발생하면 언론은 일단 정부가 발표하는 정보를 신뢰하고 이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야 한다. 재난에 따른 구조가 우선인 상황에서 언론이 현장을 헤집고 다니며 전원 구조가 됐는지 구조..
#1. 리영희 선생은 휠체어에 몸을 싣고 있었다. 무릎 위에는 담요가 올려져 있었고, 말을 하는 입술은 한쪽의 입꼬리가 다른 쪽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균형이 무너져 있었다. 하지만 선생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파주까지 찾아와, 막 ‘기자’라는 호명을 안고 연수를 받으러 온 후배들 앞에서 ‘쓰는 자’의 책무에 대해 조곤조곤 역설했다. 이른 함박눈이 거세게 쏟아진 2003년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선생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의 일례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거론했다. “남북한 사이에 영토와 군사분계선에 대한 협정은 1953년 정전협정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뿐입니다. 두 문서에선 오로지 쌍방이 인정한 영토와 군사분계선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정전협정에는 군사분계선을 연장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