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무력감이었다. 사람들은 가라앉는 세월호와 그 안에서 숨져간 이들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과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그 무력감이 어떤 이에겐 격분과 공격성으로, 어떤 이에겐 슬픔과 우울로, 어떤 이에겐 미안함으로 표출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저 감정들 사이를 오가는 사람도 있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태연한 척하다 어느 순간 터져버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했다. 세월호 안에서 숨져간 이들의 심상에 자신을 대입하면서 느끼는 공포를 유언비어에 담아 빠르게 확산하는 이들도 있었다. 유언비어 유포는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사회가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확인하고 공감을 얻은 뒤 재빨리 안도하기 위한 자기 위안적 행위였다. 총체적인 시스템의 몰락 어떤 감정이든 그것이 ..
“오늘도 엄마한테 전화하면서 울었습니다. 너무 창피하다고. 선생님이 칠판에 ‘급식지원신청서 제출’이라고 쓰시기에 가슴이 철렁했지요. 제 이름을 부르실까 봐서요. 아이들이 눈치채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요? 경험자분들 꼭 좀 대답해주세요.” “저도 이 문제로 고민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그냥 떳떳하게 가서 말하세요. 그리고 정 창피하시면, 급식비 지원 받으려고 일부러 가난하다고 거짓말했다고 하세요. 그럼 애들도 ‘와 좋겠다’ 그래요.” 2010년 12월 20일 EBS 가 방송한 ‘공짜밥’ 편에 나온 학생들의 인터넷 질의응답 가운데 일부다. 최근 보편적 무상급식을 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몽니를 부리는 가운데 전파를 타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누리꾼들은 영상을 보고 ‘눈칫밥’ 먹는 아이들의 처지에 공감하..
#1. 리영희 선생은 휠체어에 몸을 싣고 있었다. 무릎 위에는 담요가 올려져 있었고, 말을 하는 입술은 한쪽의 입꼬리가 다른 쪽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균형이 무너져 있었다. 하지만 선생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파주까지 찾아와, 막 ‘기자’라는 호명을 안고 연수를 받으러 온 후배들 앞에서 ‘쓰는 자’의 책무에 대해 조곤조곤 역설했다. 이른 함박눈이 거세게 쏟아진 2003년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선생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의 일례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거론했다. “남북한 사이에 영토와 군사분계선에 대한 협정은 1953년 정전협정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뿐입니다. 두 문서에선 오로지 쌍방이 인정한 영토와 군사분계선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정전협정에는 군사분계선을 연장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