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 기온이 영하 9도였던 13일 새벽, 쌍용차 해고 노동자 2명이 평택공장 굴뚝에 올랐다.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뒤 5년을 싸웠다. 26명의 동료와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 사법부와 행정부, 국회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벼랑 끝에 몰려 밟고선 곳이 칼바람에 ‘증기선처럼’ 흔들리는 폭 1m 도넛형 굴뚝 위다. 하지만 그들은 “함께 살자”며 여전히 희망을 말한다. 그들의 희망은 “공장 안 동료들”과 굴뚝 위를 바라봐줄 사람들의 반응이고 연대다.지배적인 반응은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독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우리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70미터 굴뚝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약하고 나약한 존재이고 무서움 또한 많고 여린 인간인지를 알리기 위해 올랐습니다”라는 해고자 이창근의..
12일 오후 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창근 실장이었다. 평소 답지않게 잔뜩 흥분된 목소리였다. “공장 안 굴뚝에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다. “눈도 오고 날씨가 이렇게 추우니 딱 이날이다 싶다”고도 했다. 나는 얼어붙었다.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 추운 날 어딜 올라간단 말이냐”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상투적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은 결의같은 것으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잔뜩 부풀어오른 듯한 그의 목소리에서 숭고함이 느껴져서였을까. 섣부른 말로 하는 제지는 이미 통할 것 같지 않았다. 13일 새벽 2시52분. 전화가 걸려왔다. 공장 진입에 성공했고, 굴뚝에 절반 정도 올라왔다고 했다. 정상에 도착하면 다시 연락하겠다고도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공장에 들어온 경로는 말할 수 없고요.” 그는 여..
18일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있자, 관련 기사의 조회 수는 평소 온라인 톱기사의 3배에 육박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아마 대부분은 이번 판결로 자신의 임금이 어떻게 변했는지, 얼마나 더 받을 수 있을지 계산해보기 위해 클릭했을 것이다. 온라인 데스크는 그런 바람을 받아 재빠르게 임금 변화 예측 기사를 잘 보이는 위치에 배치했다. 정작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자본과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정무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사실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판단을 소급 적용하는 것에 대해 “기업으로선 예상치 못한 과도한 지출을 하게 되고 기업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므로 신의칙상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법원과 판사의 자기존립 근거를 흔드는 논리였다. 근로기준법은 기본적으로 강행법규이다. ..
9일 오전 9시를 기해 일제히 시작된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총파업과 관련한 핵심 쟁점은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 쟁점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과연 민영화인가’이다. 코레일은 별도 법인의 계열사, 즉 자회사를 설립해 수서발 KTX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한 이사회를 곧 개최할 예정이다. 민영화 우려가 나오자 코레일은 계열사에 대한 코레일 지분을 41%로 확대하고, 나머지 자본금 역시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등을 대상으로 공모해 유치할 방침이며, 정관에 공공부문 이외에는 지분을 넘길 수 없도록 명시했기 때문에 민영화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는 정관에 민간매각 방지대책을 둬도 사측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정관을 변경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게다가 현행 상법은 ..
2012년 11월 18일 오후 2시.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조선소 사옥 앞에는 2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사옥에 걸린 현수막에는 ‘노동조합은 회사와 하나되어 한진중공업 75년 역사 조선 1번지 긍지와 자부심을 되찾겠습니다’라고 써 있었다. 그 건물 바로 앞에 세워진 천막 텐트의 현수막 문구는 ‘158억 손배소 철회하고 민주노조 탄압 중단하라!’였다. 지난해 11월 10일 김진숙(52)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노사가 ‘1년 뒤 정리해고자 복직’에 합의하자 농성 309일 만에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그 후 1년이 지난 지난 11월 9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 92명 복직’ 뉴스가 보도됐다. 그런데 왜 여전히 천막 텐트가 있고, 회사와 화합하는 노조와 회사를 비난하는 노조로 나뉘어 서로 대립각..
대개는 조밀한 인간사에서 벗어나 세상을 조망하거나 관망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오른다. 그러나 오히려 세상의 주목과 관심을 받으려고 높은 곳에 오르는 경우도 뜻밖에 많다. 특히 쉽게 알릴 수 없는 절실함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그 절실함만큼의 공포를 무릅쓰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타인의 무뎌진 공감을 얻어내려고 그 위에서 극한의 고난을 감내한다. 하지만 자극에 익숙해지면 더는 자극이 아닌 것처럼, 사람들은 이제 고공 농성이라는 공포와 고난을 택하는 이들을 익숙한 눈길로만 바라본다. 그들이 왜 그곳까지 올라갔는지에 대해서는 어느덧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들이 올라가 있다는 현상만 희미하게 감지할 뿐이다. 은 그들이 공포와 고난을 택한 이유, 공포와 고난을 택할 수..
이 주의 트윗 @unheim : 노동자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더 널리 퍼져야 하거늘, 그 목소리가 따옴표로 묶인 채 그 누군가의 '지적 재산권'으로 둔갑해 배포를 거부당하는 이 사태의 황당함보다는.... 공작가의 싸가지에 대한 분노가 더 큰 게죠 2009년 여름 쌍용차 옥쇄파업의 이유는 사측의 일방적 정리해고였다. 회사는 정리해고 사유를 ‘경영위기’라고 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쌍용차의 ‘구세주’로 등장한 중국 상하이차가 핵심 기술을 유출한 뒤 회계를 조작해 회사를 법정관리 체제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기술유출을 우려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정리해고 이후 법정 관리인은 회사의 운명과 국가 경제를 대의로 내세우며 노동자들을 배제했고, 이명..
지난 11일 경기 평택시 군문동 평택장례문화원 특 3호. 검은 소복을 입은 김정희씨는 아들 김철강(35)씨의 영정 앞에서 입술을 거의 열지 않은 채 몇 마디 말을 중얼대고 있었다. 메마른 입에서 조금씩 밖으로 세어나오는 그의 말은 드문드문 들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하고 싶은 거 다 해주면서 왕자처럼 키웠는데…. 해주고 싶은 게 더 많았는데 저렇게 한순간에…. 내가...” 빈소 밖에서 김철강씨를 추모하기 위해 기다리던 조문객들은 차마 그런 김정희씨를 말리지 못했다. 어머니 외엔 가족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상주 자리에 앉은 김철강씨의 이종 사촌도 그런 김정희씨를 건드리지 못했다. 아무도 김정희씨의 긴 조사에 개입할 수 없었다. 하루 전인 10일 오후 3시께 경기 평택시 비전1동 ㅈ아파트. 김정희씨는 식..
*쌍용자동차 투쟁 다큐 영화에 대한 두 번째 보고서 지난 22일 1년 만에 다시 만난 신동기(34)씨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에게 물었다. “요즘 정육점 일은 어떠신가요?” 하지만 그는 쓰게 웃으며 “그만둔 지 오래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2009년 여름, 해고 대상자가 아니면서도 77일 동안의 뜨거웠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옥쇄파업에 동참했던 그는 같은 해 11월 회사에서 파업 참가를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일자리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그에겐 이미 ‘강성’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해고 노동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이 셋을 키워야 했다. 학교 선배의 도움으로 월급 130만원을 받고 정육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20km..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옥쇄파업을 했다가 77일만에 파업을 푼 지 어제 밤으로 정확히 1년이 됐다. 그 날도 이렇게 비가 흩뿌렸다. 생각이 많아져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1년 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기고했던 르포르타주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하며 살고 있을까. 고동석(38·가명)씨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고 있었다. 50m 옆 언덕 위, 수원 경기경찰청 앞에선 쌍용차 옥쇄파업에 함께했던 동료 60여 명이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었다. 그는 정리해고 대상자 976명에 포함되지 않은, 비해고 대상자였다. ‘산 자’로 불렸다. 16년 동안 쌍용차에서 일했다. 그동안 쌍용, 대우, 상하이차, 그리고 다시 쌍용으로 경영 주체만 세 차례 바뀌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