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와 제제 논란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선생이 전화를 해오셨다."전문가적 논리와 대중의 아마추어적 논리가 있는데, 후자가 비루해 보이겠지만 그곳에 권력 기제가 있다.""대중들이 발끈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기획사와 대중 문화 권력에 수동적이던 개인들이 무의식 중에 강자의 논리를 체현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라는 부분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봤다면 어땠을까""지금은 그런 현상학은 없이 이른바 '논객'들이 선명성 경쟁만 하고 있는 것 같다.""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토해내기 위해 글을 써라.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는 양식주의는 정서적인 힘이 없다."내 속에 갇혀서 자기 객관화를 하지 못하고 있으면, 언제나 그 지점을 면도날같이 짚어주신다.갈무리를 위해 블로그에 담아둠.
딸이 하나고에 다닌다는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왔다. “한겨레 18년 독자인데 구독을 끊었다”고 했다. 입학 전형에서 남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서 남녀 성비를 고의로 맞춘 의혹을 공익 제보한 하나고 교사에게 학부모들이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는 기사를 쓴 다음날이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저 교사가 왜 공익 제보자인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비리를 처음 제기했고 하나고도 이 사실을 인정했으니 단순 폭로자가 아닌 공익 제보자”라고 했더니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인데 왜 공익 제보자냐”라고 되물었다.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는 관심없다”고 했더니 “이번 일로 내 딸이 힘들어하고 있다. 그러니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고 인트라넷 게시판에 올라온 학부모들의 글도 공익 제보 교사에 대한 비난 일..
시리아 코바니 출신의 세 살배기 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이 세계를 비통함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쿠르디는 2일 오후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의 해변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엄마, 다섯 살 형과 함께 터키 해안을 떠나 유럽으로 가려다 배가 뒤집히면서 숨을 거뒀습니다. 감청색 반바지에 빨간 티셔츠를 입고 마치 엎드려 잠이 든 것 같은 모습으로 숨진 쿠르디, 그리고 쿠르디를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기록한 뒤 주검을 옮기는 터키 해안경비대원의 침통한 얼굴은 AP통신의 취재로 전세계 언론에 타전됐습니다. 도 3일 오전부터 누리집을 통해 사진과 함께 쿠르디의 사연을 실은 기사를 내보냈습니다.(▶관련 기사 : 파도에 밀려온 3살 시리아 난민 아이의 주검…전세계 ‘공분’ )세계는 이 한 장의 보도사진에 요동치고 있습니..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령처럼 도는 글이 있다. 제목은 ‘갓물주의 하루’. ‘갓물주’는 ‘신(god)’과 ‘건물주’의 합성어다. 올해 1월 발간된 한 경제 잡지 인터뷰를 바탕으로 했다.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마포구에 3채의 빌딩, 강남구와 제주도에 땅을 소유하고 있는 이 갓물주는 임대 수익으로 월 17억원을 번다. 아침 식사를 한 뒤 골프 레슨을 받고, 특급 호텔로 가서 사우나와 점심 식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와 건물 관리자에게 자산 관련 보고를 받고 휴식하는 게 그의 일과다. 주 1회 백화점에서 부인과 쇼핑을 하고, 분기별 1회 이상 외국 여행도 다닌다. 자본이 끊임없이 자본을 불리는 이런 모습에 사람들은 분노할까.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커뮤니티나 보수를 외치는 커뮤니티나 반응은 같다. “‘조..
‘신경숙 표절 사건’은 ‘신경숙’이라는 유명 작가가 표절했다는 사실만큼이나 신경숙이라는 ‘유명 작가’를 옹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출판계의 문학 권력이 파문을 일으켰다. 여러 비판자들이 이 사건에서 문학 권력의 구조적 개입이 끼친 악영향을 성토했다. 그런데 파문이 잠잠해지자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경숙 표절 사건에 대한 여론이 “여론재판이라는 ‘광풍’의 성격을 띠었”으며 “신경숙은 혐의에 비해 과도한 징벌을 받았”다는 반론이 나왔다. “‘전설’의 표절 혐의 자체도 문학적 논의에 부쳐져야 할 일”이라고도 했다. 비판자들을 비판하는 글도 나왔다. 비판자들을 두고 “스스로 뭘 해보겠다는 강력한 신생(新生)의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하는 글이었다. 메르스 파동이 한창일 때도 비슷한..
이것은 어떤 통치에 대한 우화다. 영화 에서 임모탄 조가 세운 국가 시타델은 모든 구성원을 각자의 자리에 걸맞은 생산 영역에 동원하고 배치하는 ‘효율적’ 체제다. 외모와 몸매가 수려한 여성은 지배 권력의 인적 자원을 재생산하는 자리에, 그렇지 않은 여성은 구성원들의 먹거리인 ‘어머니의 우유’를 생산하는 위치에 분리해서 배치했다. 어린 워보이들은 시타델의 권위적 운영 체제(도르래)를 굴리는 단순 노동을 시키고, 성장한 워보이들은 체제 수호의 자원으로 동원한다. 군중도 워보이들의 지시에 따라 땅을 경작하거나 광물을 판다. 그들은 적절한 생산 벨트에 배치돼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 자원들이다.하지만 정작 생산의 터전인 땅, 생산의 핵심 동력인 물, 기름과 가스 같은 에너지, 이 터전과 동력을 관리하는 무기는 모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심에서 벌금 5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2014년 교육감 선거 당시 상대였던 고승덕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다. 이 형이 확정되면 그는 교육감 직을 잃게 된다. 그는 지난해 5월25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제보가 있다”고 밝혔다.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의 트위터 한 마디가 근거의 전부였다. 선거를 열흘 앞둔 당시 조 후보는 고 후보에게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뒤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상황 반전을 노린 무리수였다. (▶참고 : 조희연 교육감 벌금형…2014년 5월에 무슨 일이?) 판결 이후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여러가지 반응을 내놨다. “있을법한 의혹에 대한 해명 요구가 죄가 될 순 없다”거나 “한국 민주주의가 사법 ..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으로 찾은 기자. 어떤 억울함에 대한 증명으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그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선택한 기자라면 평소에 그 기자는 취재원과 상당한 신뢰 관계를 쌓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 억울함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인터뷰한 경향신문 이기수 기자는 그런 분이라고 한다. 경향신문은 훌륭한 기자를 두었고, 십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중요한 인터뷰를 했으며, 이를 잘 벼려서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50분 동안의 인터뷰 가운데 핵심적인 사안을 하나씩 꺼내 보도했고, 사실관계를 단계적으로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이완구 총리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성완종 리스트' 거론 인사들의 거짓말과 비윤리성이 더 명징하게 부각됐다. 한꺼번에 전문을 공..
KBS 일베 수습기자의 정식 임용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파벨라에 박권일, 김민하가 관련 글을 썼다. 박권일은 ‘’일베기자‘ 관련 메모: 일베스럽지 않게 일베와 싸워야할 의무’에서 “우리는 ‘일베’라는 정체성이 아니라, 일베에서 쓴 글의 내용, 즉 ‘구체적 행위를 문제삼아야 한다”며 “여론을 업고 일베 기자를 싹둑 잘라내면 속은 시원할 테지만 그 잠깐의 속시원함 외에 남는 게 별로 없다.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고민하면서, 사회적 차별발언의 범위를 논의해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민하는 ’KBS 일베 기자에 대한 생각‘에서 “KBS 내의 모든 구성원들에 대한 전면적이고 직접적인 차별금지교육을 상시적으로 시행하고, 차별금지교육의 성과를 인사평가에 반영해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조금이라도 해치면 ..
우리는 사건을 둘러싼 구조를 살피자는 제의를 ‘촌스럽다’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건의 끔찍함이 강렬할수록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가해자에게 격분한다. 격분은 문제의 책임을 가해자에게 집중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사건을 낳은 구조의 문제는 성찰하지 않는다. 구조의 문제는 쉽게 인식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건을 해결하는 즉자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건의 끔찍함은 피해자만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한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안긴다. 때로는 자신을 피해자의 지위에 대입해 같은 피해 상황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자신이 고통받는 이유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다. 언론인 12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파리의 테러는 한국에 실시간 뉴스로 전달됐다. 무엇보다 언론사에 침투해 한 명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