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질문을 해보자. 영화 은 정말 다수 언론과 평론가들이 말하는 대로 ‘리더십 부재의 시대‘에 확고한 리더십을 보여준 이순신에 대한 열망 때문에 흥행하고 있는 것인가. 개봉 12일 만이라는 역대 최단 기간 1000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과 다시 부는 김훈의 소설 열풍, 늘어나고 있다는 참배객들을 보면 언뜻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정작 영화 속에 “이순신의 리더로서의 딜레마를 질문하는 대목이 있던가… 영화 안에 백성을 위한 영웅의 면모와 진정한 리더로서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분명 속 이순신에게 새로운 어떤 '리더십의 전형'을 발견해내기는 쉽지 않다. 모든 장수들이 꽁무니를 빼고 있을 때 홀로 앞장 서 싸운 것이 리더십이라면, 모든 장수들을 함께 싸우게 만들지 못한 ..
※ 영화 내용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는 주제 의식이 선명한 영화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언로가 막혀있다 여겨지는 사회에서 영화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고발을 공유하는 중요한 매개가 됐다. (2011), (2011), (2011), (2012), (2012) 등이 성공과 실패를 거쳤고, 천만 관객을 동원한 (2013)에 이르러 사회 고발 영화의 대중 동원력은 정점을 찍었다. 부조리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고발극이나 다큐멘터리에서 시작해 부조리에 분노하고 각성해 정의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한 인간의 성장 서사(변호인)까지 사회 고발 영화의 화법이 진화했다. 한국의 사회 고발 영화는 사건을 파헤치게 만들거나 인간을 분노케하는 선명한 적대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대체로 연..
▶ 서울에 사는 359만가구 중 44.2%인 154만6509가구(2012년 기준)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도시의 지배적 거주 공간이 됐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아파트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아파트는 투자가 아닌 거주를 위한 곳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되찾고 있습니다. 아파트 주민회를 둘러싼 정치가 더 중요해진 까닭입니다.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갈등의 현장에서, 그 정치학을 짚어봤습니다. 지난달 11일 저녁 서울 동작구 본동 신동아아파트 관리사무소. 김경희(58)씨는 입주자대표회의 동대표들에게 “당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동대표가 김씨를 밀쳐내고 “이 공사는 꼭 해야 합니다. 강행할 겁니다!”라고 외치고 나섰다. 한쪽으로 밀려난 김씨는 다시 “청소와 경비 용역업체 ..
신념이 자유의 언어라면, 책임은 공유의 언어다. 자유는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나의 신념을 외부에 의해 간섭받지 않는다. 만약 외부의 간섭이 있다해도, 그 간섭은 나의 사유를 거쳐 나의 윤리로 정립되면서 나의 신념으로 다시 변증한다. 반면 책임은 나만의 것이 될 수 없다. 책임은 관계 속에서 이뤄진 행동이나 관계를 규정짓는 권력의 작동으로 인해 파생된 어떤 결과를 짊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책임은 나와 너의 관계 위에 걸친 채 공유된다. 유시민이 지난 19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트위터(@u_simin)에 쓴 표현은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다”였다. 는 독일의 사회학자 맑스 베버가 펴낸 책 이름이다. 베버는 책에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조화를 거론하면서, 신념윤리보다는 책임..
며칠 전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트위터에 사진을 올렸다. 박근혜 지지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박정희와 육영수의 영정을 앞에 두고 큰절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진 교수는 “혹시 이런 미래를 원하십니까?”라고 썼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 모습이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미래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박정희를 신성화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어도, 2012년의 한국 사회에서 이런 모습이 일반화하리라 상상하는 건 무리수다. 진 교수도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25년 동안 진화한 한국의 민주화는 이미 하나의 문화로 공고화해 있다. 그런데 이런 지적을 하며 “문재..
기득권이 노력과 실력에 따라 쟁취할 수 있는 욕망의 대상으로 오해될 때, 기득권을 가진 자와 미래의 기득권을 욕망하는 자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힘을 합친다. 학벌과 같은 문화자본이 한국 사회의 일부 계급을 중심으로 세습되고 그 세습이 고착화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도, 이 지적에 대한 반발에 이미 기득권을 가진 자가 아니라 미래의 기득권을 욕망하고 있는 자들이 핵심 주체로 나서는 현상은,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가 얼마나 교육의 본질 그 이상의 가치로 포장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점은, 이미 기득권을 가진 자가 아니라 미래의 기득권을 욕망하는 자가 언젠가 그 욕망에서 철저히 배제된 뒤 겪게 될 박탈감이 사회로 ..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 "기자윤리강령에 객관성 중립성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중동 기자의 객관성 및 중립성의 기준은 뭔가요? 조중동은 차치하더라도, XXX 기자와 XXX 기자의 중립성 객관성은 여기서는 그냥 개인의 의견일 수밖에 없나요?" 트위터로 들어온 질문인데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140자 몇 번으로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는 사안도 못되는 것 같고, 마침 최근 비슷한 생각을 잠깐 한 적도 있어서 블로그에 글을 정리해 봤다. 다만 정제된 의견은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두고 얘기를 풀어가야겠다. 일단 기자윤리강령에는 ‘우리는 뉴스를 보도함에 있어서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한다’라는 항목이 있다. 이 강령에 기반을 둔 것인지 아니면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책무인 ..
지난 11일 경기 평택시 군문동 평택장례문화원 특 3호. 검은 소복을 입은 김정희씨는 아들 김철강(35)씨의 영정 앞에서 입술을 거의 열지 않은 채 몇 마디 말을 중얼대고 있었다. 메마른 입에서 조금씩 밖으로 세어나오는 그의 말은 드문드문 들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하고 싶은 거 다 해주면서 왕자처럼 키웠는데…. 해주고 싶은 게 더 많았는데 저렇게 한순간에…. 내가...” 빈소 밖에서 김철강씨를 추모하기 위해 기다리던 조문객들은 차마 그런 김정희씨를 말리지 못했다. 어머니 외엔 가족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상주 자리에 앉은 김철강씨의 이종 사촌도 그런 김정희씨를 건드리지 못했다. 아무도 김정희씨의 긴 조사에 개입할 수 없었다. 하루 전인 10일 오후 3시께 경기 평택시 비전1동 ㅈ아파트. 김정희씨는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