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컬처 파티 51+' 현장 르포르타주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4번 출구로 나와 100m쯤 걸어가면 나오는 동교동 167번지 일대는 땅이 푹 꺼져 있다. 땅은 일대의 고층 건물 숲을 받히는 콘크리트 바닥과 어울리지 않게 흙과 모래의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 땅에 덩그러니 섬처럼 서 있는 3층 건물이 있다. 톱으로 잘라낸 듯 거친 시멘트 단면을 드러낸 채 곧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선 그 건물에는 철거대상 딱지가 붙어있다. 대신 인천공항으로 가는 경전철역이 들어설 예정인 탓이다. 5월 1일, 그 건물 앞마당에 사람들이 5100원 혹은 1만 2000원을 내고 모였다. 풍덩한 천을 옷 삼아 몸 아래 위를 두른 남녀, 머리를 땋은 외국인 남자, 올이 나간 스타킹을 입고 헌옷과 책을 좌판 하..
이재훈의 인앤아웃 no.33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고3 1학기 중간고사 때였다. 혈압이 높고 심장이 약했던 그는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했다. 좁은 마당에 천막이 내걸렸다. 문상객이 올 때마다 아버지는 울었다. 아버지는 처음 눈 콧물과 함께 울었지만 한나절이 지나고부턴 소리로만 길게 울었다. 아버지의 울음은 점액질을 잃어가는 만큼이나 감정도 메말라가는 듯했다. 문상객들은 아버지의 손을 어루만지며 황망해한 뒤 곧 고기국밥을 우걱우걱 먹었다. 그리곤 소주를 마시거나 화투를 치며 떠들썩하게 놀았다. 나는 문상객들과 아버지를 잃은 내 아버지가 슬픔을 금세 지우는 모습에 난감했다. 열여덟의 나는 장례라는 절차가 죽은 자보다 산 자를 위한 것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문상객의 고성방가가 피붙이를 잃은 이의 공허함을 달래려..
이재훈의 인앤아웃 no.32 그의 아버지는 시골의 실업계 학교 교사다. 혈압 탓에 몸이 불편해선지 아버지는 요즘 흰 머리가 부쩍 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평소 별로 말이 없다. 늙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래서 눈 대중으로 짐작만 가능하다.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교원단체 명단을 공개했다는 뉴스가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명단을 훑어봤다. 아버지의 이름 옆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역시 말한 적이 없었다. 곧 정년 퇴임이니 별일이야 있겠나 싶으면서도 걱정이 된다. 그는 "오늘 집에 소주라도 한 병 사가지고 가야겠다"고 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법의 판결을 무시하고 교원단체 명단 공개를 강행했다. 공개 이후 반응은 엇갈렸다. "전교조라는 게 떳떳하다면 왜 공개를 꺼리느냐"는 ..
채 꽃펴보지 못한 젊음들이 의무와 법의 강제란 이름으로 집총했다가 차가운 물속에서 하나 둘 스러져 갔다. 익히 예상은 했지만 사고 이후 한동안 뿌옇게 부유했던 죽음은 함미가 인양되고 주검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더 이상 부인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실체가 되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죽어야 했던가. 그 물음에 대답해야할, 그들을 차출했던 국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런 와중에 침몰 사고의 원인과 정부의 대처에 대한 온갖 의혹과 정치적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보수 신문은 사건 초반부터 별다른 근거도 없이 북한 공격설을 제기하며 안보를 상업화하는데 여념이 없다. 익히 예상했던 대로다. 반면 진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안보 상업주의의 대척점에서 북한 연계설의 여론 확장을 막는 안티로서의 존재감..
이재훈의 인앤아웃 no.31 그는 20년 삶을 간단하게 돌아봤다. 초등학교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살아왔고, 결국 남들이 명명하는 '명문대'에 합격했다. 다들 그렇게 살았으니까 당연한 줄 알았다고 했다. "이미 주어진 하나의 정답 앞에 물음은 의미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문득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친구들과 전부 똑같은 것을 위해 경쟁해야 하는지, 왜 수많은 아이들이 패배자가 되어야 하는지, 왜 이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야하는 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신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에 대한 첫 회의였다. 회의 끝의 선택은 강요된 이데올로기, 즉 명문대에서의 이탈이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선언을 남기고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24)씨는 이후 숱..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9 한국은 평등주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했던 국가다. 1960~70년대 새마을운동의 구호는 '다함께 잘살자'였다. 모두가 최저생존권조차 갖추기 힘들었을 때 이 구호는 강력했다. 나의 이익보다 '조국'의 발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면 모두가 잘 살게 되리란 믿음이 그땐 있었다. 야간 통금과 장발 단속 등 일상적 자유에 대한 억압은 평등의 가치에 대한 신화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다고 믿어졌다. 70년대 초반 고교평준화 실시, 개발제한구역 설정 등과 같은 국가 제도는 평등의 가치를 전유하기 위해 등장했다. 하지만 70~80년대를 거치며 기승을 부린 부동산 투기붐은 평등의 신화가 해체되는 시작점이었다. '다함께 잘사는' 세상은 온전히 오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 이후 신자유주의..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8 지난해 10월부터 지하철과 보행로 곳곳엔 '우측통행' 게시글이 붙어있다. 국가는 '보행속도 증가'와 '심리적 부담 감소', '보행자 안전'과 '글로벌 보행문화 정착' 등을 시행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 나가보면 우측보행을 엄숙히 따르며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들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좌측보행이 왜 우측보행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마저 그다지 없다. 왜 그럴까. 국가가 명령을 내리면 무조건 따라야만 전체가 발전할 것 같던 때가 있었다. 긴 머리를 자르라면 잘라야했고, 미니스커트를 입지 말라면 입지 않아야했다. 긴 머리와 미니스커트가 왜 국가 발전에 방해가 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강력한 국가의 ..
2005년 초여름 한국은 '삼순이 열풍'에 몸살을 앓았다. 몸은 뚱뚱하고 이름은 촌티가 흐르는 여자. 결혼과 현실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서른 살 여자란 시기적 비주류성에다 고졸 학력을 갖췄고 편모슬하이기까지. 갖춘 거라곤 날카로운 언변과 누구 앞에서도 꿀리지 않는 당당함 뿐이다. 하긴 그 두 가지마저 여자가 가지면 한국 사회에선 그다지 장점이 되지 못한다. '못 생긴 게 성질까지 더럽다'는 소릴 듣기 딱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순이는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지지의 바탕엔 두 가지 까닭이 자리 잡고 있다. 하나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 '루저'인 그녀가 '밀땅' 연애를 하는 대상이 바로 얼짱에다 재력까지 갖춘 대표적인 엄친아 '삼식이'였기 때문이다. "삼겹살 출렁이는 주제에 감히 우..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7 "제가 감옥버스를 타려할 때 절 부르셨죠. 야첵! 이라고. 전 스물한 살이나 먹었는데 절 부르는 소리에 눈물이 났어요", "재판할 때도 여러 번 불렀지 않나", "그 전엔 들리지 않았어요. 그땐 모든 사람이 절 비난하고 있었으니까." 영화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야첵은 별다른 까닭 없이 택시기사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끝내 사형 당하고 만다. 어린 시절 여동생의 죽음으로 강한 트라우마를 안게 된 그는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킨 채 자기 안의 세계에서만 살았다. 외부의 요인에 의해 생긴 충격을 다시 받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방어적으로 온몸을 옹송그렸다. 하지만 내부로의 고립이 점점 깊어질수록 살아야할 이유는 점점 상실하게 됐다. 아무 잘못 없는 택시기사를 살해하고도, 야첵은 ..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6 꽃다운 13세 소녀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빈집에서 성폭행당하고 무참히 살해됐다. 범죄의 잔혹성과 제대로 피어보지 못한 소녀에 대한 안타까움에 전국이 들끓었다. 피의자 김길태(33)씨는 10일 체포된 뒤 경찰에 압송되는 과정에서 1000여명의 시민에게 증오가 담긴 욕설을 들었다. 한 시민은 그의 뒤통수를 내려치기도 했다. 김씨의 DNA와 소녀의 시신에서 발견된 타액의 DNA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가 범인일 확률은 95% 이상이다. 경찰은 자백으로 남은 5%를 채우려 할 것이고, 죄의 확정은 증거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법원의 몫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압송 과정에서 김씨의 얼굴이 공개된 것에 논란이 일었다. 20명의 노인과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40)도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