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인앤아웃 no.24 고교생들이 중학생 후배들을 불러놓고 졸업식 뒤풀이를 했다. 살갗이 찢어질듯 한 날씨에 옷을 벗으라고 강요한 것도 모자라 망설이는 아이들의 교복을 가위로 잘라내기도 했다. 가해 학생 중 일부는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살갗을 에는 고통보다 피해 학생들은 그들 앞에 온몸이 까발려진 상황이 준 수치심, 그리고 그 수치심이 그곳에 머물지 않고 세상 전체로 공유됐다는 점에서 정신적 충격이 더 컸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대체 무엇이 가해 학생들의 광기 어린 폭력적 일탈을 불렀을까 생각하면 막막함이 깃든다.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은 대체로 가해 학생들 자체에 대한 분노다. 여기에 '철없는' 혹은 '배려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극악한 10대들이라는 키워드가 분노에 담긴다. 여기서..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3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했다. 그는 짜맞춘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하는 대학 공부가 노동계급인 양부모가 준 학비에 견줄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6개월 만에 자퇴했다. 잡스는 그 뒤 관심 있는 강의만 도강하며 배운 서체 디자인을 초기의 역작 매킨토시에 녹였다.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해고당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는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해고로 인해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했다"며 그때를 돌아봤다. '스티브 잡스'가 다시 키워드다. 스탠퍼드대 졸업식과 아이패드 소개 연설 동영상은 스크랩 1순위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네트워킹의 일상화를 가능케하고 새로운 '애플 매트릭스'를 창조했다는 평가까지 나온..
을 읽으며 떠올린 15년 전의 기억 너의 이름을 뇌 깊숙한 곳에 봉인하던 그때도 지금처럼 온몸이 시린 2월의 겨울이었다. 요한아. 무엇이 그 봉인을 풀었는지 지금 이순간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문득 나는, 너와 달리 나는 졸업까지 했던 우리의 학교와 너의 이름을 검색창에 쓰고 돋보기 버튼을 눌렀다. 다행일까. 포털 한 곳은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사이트는 너의 이름과 죽음의 방법을 적고 '경쟁적 입시교육을 계속 고집하는 시교육청의 무책임함'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랬다. 너는 1995년 2월27일 오전 8시10분, 대구 대륜고등학교 본관 2층 화장실에서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스스로 숨을 끊었다. 너의 죽음은 한 신문에 묵묵히 기록돼 있었다. 신문은 경찰의 입을 빌려 "..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2 소녀들이 'oh'빠를 외치자 삼촌들은 좌절했다. 삼촌들을 버리고 오빠에게 간 소녀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을까. 아닐 것이다. 삼촌들은 안다. 오빠로 불리지 않아도 '오빠'의 위치에서 소녀들의 소몰이춤에 열광할 수 있다는 걸. 소녀들은 어차피 현실의 연애 상대가 아니니까 말이다. 나이에 맞춰 어리게 보여야 할 필요도, 외모에 맞춰 짐승 같은 복근을 가져야할 의무도, 그들에겐 없다. 알아서 해군 제복을 입고 삼촌들의 군대 트라우마를 순식간에 '치유'해주거나('소원을 말해봐'), 치어리더로 변신해 근육을 부딪히는 삼촌들만의 세계에 복종하는('oh!') '착한' 소녀들 아닌가. "10분 만에 널 유혹할 수 있다"며 홀로 서서 "나만 바라봐"를 강요하던 이효리와 달리 취향에 따라 9명 중..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1 MBC '지붕뚫고 하이킥'이 내달 1일 100회를 맞는다. 일주일에 닷새, 20% 넘는 시청자들이 배꼽잡고 방바닥을 뒹굴게 만드는 지붕킥의 힘은 각자가 주인공이라 할 만한 캐릭터들을 잘 짜놓은 텍스트에서 나온다. 장인에게 뺨 맞고 가정부에게 분풀이하는 정보석의 극소심에선 상사의 히스테리를 부하 직원에게 고스란히 갚는 직장에서의 우리 모습이 읽힌다. 여배우로선 치명적이게도 콧구멍을 벌름대고 분노하며(그것도 HD화면에다!) 속에 있는 말을 몽땅 내뱉는 황정음에겐 다소곳한 태도를 강요받아온 여성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대상을 막론하고 내 편이나 "내 꺼"가 아니면 내지르는 '빵꾸똥꾸'로 근엄한 뉴스 앵커까지 웃겨버린 해리는, 할 말은 하는 이들은 되바라졌음을 이유로 팽당하는 사회에 ..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0 장발장은 빵을 훔치고 19년간 감옥살이를 해야했다. 지금 다시 법정에 그를 세운다면 굶어 죽을 수 없었던 절박한 선택과 그 반대 급부에 서 있는 빵 주인의 경제적 손실을 두고 법리 논쟁이 펼쳐질 것이다. 이때 법은 절실한 처지를 동정하는 시각을 배제하고 절도죄라는 법리로만 그를 구속할 수도 있고, 경제적 손실만 갚으면 절도 행위 자체는 감면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의만으로 판단하는 법정에서라면 그는 단연코 무죄다. 굶어 죽음으로 인한 생명의 손실보다 우위에 설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법원과 검찰이 용산사건 수사기록 공개를 두고 충돌하고 있다. 수사기록 공개 여부의 열쇠를 쥔 형사소송법을 두고 법리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법리 다툼 뒤에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어온 법원의 ..
이재훈의 인앤아웃 no.19 그는 내내 굳건한 표정이었다. 옆자리엔 그의 아내가 고개를 숙인 채 검은 목도리 위로 눈물을 뚝뚝 떨궜다. 영하의 찬바람 탓인지 눈물은 목도리 위에 한참 응결졌다. 그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서러움을 보듬으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때 영결식 무대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그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다함께 외쳐봅시다. 여.기.사.람.이.있.다!" 순간 그의 얼굴 근육이 꿈틀댔다. 355일 전 그날, 망루에서 먼저 몸을 던진 뒤 뒤이어 뛰어내릴 줄 알았던 아버지와 동료 4명이 불길에 갇혀 내질렀던 절규가 떠올랐을까. 그는 질끈 눈을 감았고, 눈꺼풀 사이에선 눈물이 툭 떨어졌다. 이충연씨는 9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에서 그렇게 아버지 이상림씨를..
이재훈의 인앤아웃 no.18 초등학교 때 TV를 켜면 명절의 성룡 영화만큼이나 '똘이장군'이 자주 방송을 탔다. 똘이장군은 '김일성 동지'란 이름의 붉은 돼지와 싸웠다. 똘이장군이 돼지를 물리치면 왠지 "똘이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란 주제가를 따라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뒤로 '김일성'과 함께 '동지'란 단어를 쓰려면 왠지 주변을 돌아봐야할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각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요즘은 가끔 기사를 쓰다 '노동자'란 단어를 고를 때 왠지 쭈뼛거리는 나를 본다. 기자 초년병 시절 ‘노동자’란 단어를 쓰면 몇몇 데스크들은 혀를 차며 '근로자'로 고쳐 썼다. 법전에 등재된 '근로자'란 단어가 신문의 공식 용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공식은 신문마다 달랐고, 때론..
이재훈의 인앤아웃 no.17 얼마 전 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잔뜩 열 오른 목소리로 "형, 나 아이폰 샀는데, 기자들이 쓰면 좋을 것 같아. 형도 사라"고 했다. 50인치 LED TV가 나오는 시대에 영화를 빔으로 쏘는 아날로그적 맛이 조아 중고 프로젝터를 살 만큼 ‘레이트 어댑터’인 난 "뭐가 그리 좋냐"라며 시큰둥했다. 하지만 동생은 기가 꺾이지 않고 "아무 데서나 인터넷이 가능하고, 글도 어디서든 올릴 수 있어. 형이 어디서든 기사를 쓸 수가 있다고!"라고 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데다 못지 않은 레이트 어댑터인 동생을 한껏 달뜨게 하더니, 열풍이 불어 연말까지 50만명에 가까운 이용자가 생길 태세란다. 대체 왜, 란 궁금증이 도졌다. 아이폰 사용기를 찬찬히 뜯어봤더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사..
그녀는 관조한다. 정적인 그림을 보고 동적인 상상을 한다. 때론 자신의 상상이 개조해낸 캐릭터를 묘사하며 따뜻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까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지점에서 더는 발을 내딛지 않는다. 캐릭터가 처절하게 몸부림쳐도, 그녀는 입을 막고 함께 울지언정, 그 몸부림을 받아 안아줄 깜냥이 자신에게 없음을 알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뿐이다. 그녀는 담담히 자신의 한계와 자신의 깜냥, 자신의 시선을 글로 표현한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몰입하지 않은 만큼이나 깔끔하다. 그는 몰입한다. 개체를 둘러싼 온갖 이데올로기의 틈입이라는 물결을, 그는 온 손가락과 발가락을 동원해 조금이라도 막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끝내 그 개체는 이데올로기의 틈입으로부터 물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이 막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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