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 부부와 아이살해 여성에게 떠맡긴 공동체 윤리의 비도덕성 게임에 빠져 태어난 지 석달된 딸을 집안에 방치해 굶어 죽게 한 부부가 수원 경찰에 구속됐다. 부부가 매일 하루 4~6시간 정도 즐긴 게임이 가상의 세계에서 소녀 캐릭터를 키우는 종류라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받아들여졌다. '게임중독'이 단박에 검색 키워드가 됐고, 부부의 부도덕성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경찰은 "자기 자식이 우선이지, 내 자식은 굶고 있는데 인터넷 게임에서 캐릭터를 키우는데 빠져 내 자식을 굶어 죽게 했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며 법적인 재단 외에 '일반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도덕적 비난에 가세했다. 하지만 내겐 '게임중독'과 '친딸을 저버리고 키운 가상의 딸'이란 키워드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다. 숨진..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5 4년 만에 만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아이들은 여전했다. 파리한 몸에 걸친 옷은 남루했고 흙 때가 까맣게 낀 손톱엔 핏기가 없었다. 올려다보는 눈동자는 빛을 잃고 있었다. 아이들은 물기없는 입술을 옹송그리며 나무 피리와 팔찌, 손톱깎이와 비단 천, 복제 책과 기념 티셔츠를 들고 저마다 자기의 물건을 사달라고 호소했다. 여전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4년 전 2개에 1달러이던 가격은 1개에 1달러로 뛰어 있었다. 영어로 "선생님, 2개에 1달러에요"라고 말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한국말을 배워 "오빠, 하나만 사. 손톱깎이. 천원"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1000원짜리 지폐를 들고 흔드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오빠'란 단어에서 잔뜩 이물감이 들었다. 일용노동자 하루 ..
에서 본 개별적 주체에 대한 기대 대상에 대한 호명에는 대상에 대해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는 신화가 담긴다. '명품'으로 호명되는 각종 고가 브랜드 제품들이 한 예다. 명품 소비자들은 제품의 실질적 사용가치보다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타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대중의 신화를 소비하는 데 기꺼이 막대한 돈을 지불한다. 그런 신화의 단면이 '짝퉁'이다. 짝퉁을 산다는 건 명품의 '정당한' 가치라고 믿어지는 만큼의 돈을 지불하지 않고 브랜드의 '객관적 신화'만 툭 떼어내 소유하고자 하는 행위다. 하지만 짝퉁을 산 사람 가운데 자랑스레 "나 짝퉁 샀어"라고 말하는 이가 드물 듯 짝퉁 소비자들은 명품의 가치가 '신화적'이라는 걸 역설적으로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대상에..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4 고교생들이 중학생 후배들을 불러놓고 졸업식 뒤풀이를 했다. 살갗이 찢어질듯 한 날씨에 옷을 벗으라고 강요한 것도 모자라 망설이는 아이들의 교복을 가위로 잘라내기도 했다. 가해 학생 중 일부는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살갗을 에는 고통보다 피해 학생들은 그들 앞에 온몸이 까발려진 상황이 준 수치심, 그리고 그 수치심이 그곳에 머물지 않고 세상 전체로 공유됐다는 점에서 정신적 충격이 더 컸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대체 무엇이 가해 학생들의 광기 어린 폭력적 일탈을 불렀을까 생각하면 막막함이 깃든다.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은 대체로 가해 학생들 자체에 대한 분노다. 여기에 '철없는' 혹은 '배려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극악한 10대들이라는 키워드가 분노에 담긴다. 여기서..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3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했다. 그는 짜맞춘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하는 대학 공부가 노동계급인 양부모가 준 학비에 견줄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6개월 만에 자퇴했다. 잡스는 그 뒤 관심 있는 강의만 도강하며 배운 서체 디자인을 초기의 역작 매킨토시에 녹였다.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해고당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는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해고로 인해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했다"며 그때를 돌아봤다. '스티브 잡스'가 다시 키워드다. 스탠퍼드대 졸업식과 아이패드 소개 연설 동영상은 스크랩 1순위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네트워킹의 일상화를 가능케하고 새로운 '애플 매트릭스'를 창조했다는 평가까지 나온..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2 소녀들이 'oh'빠를 외치자 삼촌들은 좌절했다. 삼촌들을 버리고 오빠에게 간 소녀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을까. 아닐 것이다. 삼촌들은 안다. 오빠로 불리지 않아도 '오빠'의 위치에서 소녀들의 소몰이춤에 열광할 수 있다는 걸. 소녀들은 어차피 현실의 연애 상대가 아니니까 말이다. 나이에 맞춰 어리게 보여야 할 필요도, 외모에 맞춰 짐승 같은 복근을 가져야할 의무도, 그들에겐 없다. 알아서 해군 제복을 입고 삼촌들의 군대 트라우마를 순식간에 '치유'해주거나('소원을 말해봐'), 치어리더로 변신해 근육을 부딪히는 삼촌들만의 세계에 복종하는('oh!') '착한' 소녀들 아닌가. "10분 만에 널 유혹할 수 있다"며 홀로 서서 "나만 바라봐"를 강요하던 이효리와 달리 취향에 따라 9명 중..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1 MBC '지붕뚫고 하이킥'이 내달 1일 100회를 맞는다. 일주일에 닷새, 20% 넘는 시청자들이 배꼽잡고 방바닥을 뒹굴게 만드는 지붕킥의 힘은 각자가 주인공이라 할 만한 캐릭터들을 잘 짜놓은 텍스트에서 나온다. 장인에게 뺨 맞고 가정부에게 분풀이하는 정보석의 극소심에선 상사의 히스테리를 부하 직원에게 고스란히 갚는 직장에서의 우리 모습이 읽힌다. 여배우로선 치명적이게도 콧구멍을 벌름대고 분노하며(그것도 HD화면에다!) 속에 있는 말을 몽땅 내뱉는 황정음에겐 다소곳한 태도를 강요받아온 여성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대상을 막론하고 내 편이나 "내 꺼"가 아니면 내지르는 '빵꾸똥꾸'로 근엄한 뉴스 앵커까지 웃겨버린 해리는, 할 말은 하는 이들은 되바라졌음을 이유로 팽당하는 사회에 ..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0 장발장은 빵을 훔치고 19년간 감옥살이를 해야했다. 지금 다시 법정에 그를 세운다면 굶어 죽을 수 없었던 절박한 선택과 그 반대 급부에 서 있는 빵 주인의 경제적 손실을 두고 법리 논쟁이 펼쳐질 것이다. 이때 법은 절실한 처지를 동정하는 시각을 배제하고 절도죄라는 법리로만 그를 구속할 수도 있고, 경제적 손실만 갚으면 절도 행위 자체는 감면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의만으로 판단하는 법정에서라면 그는 단연코 무죄다. 굶어 죽음으로 인한 생명의 손실보다 우위에 설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법원과 검찰이 용산사건 수사기록 공개를 두고 충돌하고 있다. 수사기록 공개 여부의 열쇠를 쥔 형사소송법을 두고 법리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법리 다툼 뒤에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어온 법원의 ..
이재훈의 인앤아웃 no.19 그는 내내 굳건한 표정이었다. 옆자리엔 그의 아내가 고개를 숙인 채 검은 목도리 위로 눈물을 뚝뚝 떨궜다. 영하의 찬바람 탓인지 눈물은 목도리 위에 한참 응결졌다. 그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서러움을 보듬으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때 영결식 무대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그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다함께 외쳐봅시다. 여.기.사.람.이.있.다!" 순간 그의 얼굴 근육이 꿈틀댔다. 355일 전 그날, 망루에서 먼저 몸을 던진 뒤 뒤이어 뛰어내릴 줄 알았던 아버지와 동료 4명이 불길에 갇혀 내질렀던 절규가 떠올랐을까. 그는 질끈 눈을 감았고, 눈꺼풀 사이에선 눈물이 툭 떨어졌다. 이충연씨는 9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에서 그렇게 아버지 이상림씨를..
이재훈의 인앤아웃 no.18 초등학교 때 TV를 켜면 명절의 성룡 영화만큼이나 '똘이장군'이 자주 방송을 탔다. 똘이장군은 '김일성 동지'란 이름의 붉은 돼지와 싸웠다. 똘이장군이 돼지를 물리치면 왠지 "똘이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란 주제가를 따라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뒤로 '김일성'과 함께 '동지'란 단어를 쓰려면 왠지 주변을 돌아봐야할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각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요즘은 가끔 기사를 쓰다 '노동자'란 단어를 고를 때 왠지 쭈뼛거리는 나를 본다. 기자 초년병 시절 ‘노동자’란 단어를 쓰면 몇몇 데스크들은 혀를 차며 '근로자'로 고쳐 썼다. 법전에 등재된 '근로자'란 단어가 신문의 공식 용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공식은 신문마다 달랐고, 때론..